동경고이와성산교회
 
 
 
2019/04/22
예수님의 행저 (30) / 십자가의 영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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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예수
Subject     예수님의 행적(27) / 주님의 기도
성경: 마26:36-46절,                  제목: 주님의 기도
설교: 김 병철 목사, 일시:2019년 3월 31일(주일 낮 설교)

  오늘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은혜의 말씀에 제목은“주님의 기도”이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기를 소원합니다. 이 말씀을 읽고 듣고 보는 가운데 성령 하나님의 폭포수와 같은 은혜가 저와 여러분들 심령 가운데 넘쳐나시기를 존귀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본문 내용은 마태복음 26장과 마가복음 14장 그리고 누가복음 22장에 동시에 언급되어있는 말씀입니다. 저는 이 세 곳을 종합하여서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하나님 아버지께 간절히 기도했다는 장면이 오늘 본문입니다. 이 내용을 살펴보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기를 소원합니다.

  여러분들은 언제 기도를 드립니까? 많은 사람들이 기도할 때 각각 상황과 그 여건이 다르기 때문에 정확하게 언제 기도하느냐? 라고 질문한다면 어쩌면 대답하기 어려울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질문해 보겠습니다. 당신은 언제 기도를 드리십니까? 몇 가지 상황을 생각해 보면서 답을 해 보겠습니다. 슬플 때 기도하지요. 이 표현에는 엄청 많은 것들을 내포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괴롭고, 힘들며, 고통스러운 상황에 직면했을 때에 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또한, 기쁠 때 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 잘 되었다던가? 아니면 바라고 원했던 것이 이루어졌을 때 우리는 흔히 감사의 기도를 한다고 말을 합니다. 또 언제 기도를 드릴까요? 인간의 한계를 벗어났을 때 기도를 드립니다. 내 힘으로는 도저히 안 될 때, 인간이 최고로 숭배하고 있는 과학, 의학으로 안될 때, 마지막으로 기도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모 기업에 회장이 몸이 아파서)
  예수님의 기도는 이 세 가지 중 어떤 부분에 속할까요? 아마도 첫 번째에 해당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이룬다는 의미에서는, 두 번째라고 말할 수는 있겠지만, 육체를 갖고 계신 예수님 심정에서 생각해 볼 때, 첫 번째, 내지는 세 번째가 아닌가? 싶습니다. 본문을 두고 흔히 겟세마네 기도, 감람산 기도라고 말을 합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 기도하셨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이 내용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알고 계시리라고 생각해서 따로 설명은 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오늘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얼마나 처절하게 기도하셨는지를 생각해 보면서 저와 여러분들의 기도하는 자세를 점검했으면 합니다.

  기도란 무엇일까? 시중에 나오는 서점에 가보면 기도에 대해서 무수히 많은, 책들이 나와 있습니다. 목차를 보면 기도란 무엇인가? 기도에 대한 정의 그리고 기도에 대한 개인의 경험담으로 정리를 해 놓은 경우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께서 알고 있는 기도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기도란 흔히 영혼의 호흡이다. 기도란 하나님과의 대화이다. 기도란 자신의 소원을 하나님께 아뢰는 것이다. 기도란 하나님의 뜻을 찾아 가는 행동이다.라고 말합니다. 모두 다 일리가 있고, 어떤 면에서 다 맞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이 외에도 기도에 대한 정의를 말한다면 여러 가지가 있을 줄 압니다. 저는 이 시간 또 하나의 기도에 대해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개인적으로 기도란 선택이다. 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왜! 기도가 선택일까? 어떤 면에서 기도가 선택이라고 말하는 것일까? 흔히 기도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알아보고 그 뜻을 따르려고 하는 행동입니다. 그렇지요. 사실 기도란 하나님의 뜻을 찾아가는 방법이라고 말들을 많이 하지만, 좀 더 정확하게 말해 봅시다. 하나님의 뜻을 찾는 방법은 오히려 쉬울지 모르겠습니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도 맞습니다. 그 뜻을 찾는 방법은 자신의 마음을 조금 비우기만 해도, 의외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하나님의 뜻을 단순 명료하게, 쉽게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문제는 뜻을 발견하고 난 후에 그 뜻을 따라가려고 할 때 능력이 없다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기도란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난 이후에 하나님의 뜻을 따를 것인가? 나의 감정에 충실하여 나의 감정을 따라갈 것인가? 이것을 선택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이 선택은 대단히 어려운 것입니다. 인간이 자신의 감정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려는데는 엄청난 자기 포기와 용기와 믿음이 수반 되어야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진정한 기도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무리 많이 기도하면 무엇하겠습니까? 날마다 몇 시간씩, 영적인 호흡을 하고, 하나님과 대화를 하며, 자신의 고통과 어려움을 하나님께 아뢰며, 또한 자신의 소원을 빌었다고 합시다. 그리고 하나님의 엄청난 비밀과 뜻을 여러분들이 기도 중에 발견했다고 합시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그 엄청난 비밀을 깨 내고는 나의 삶에 제대로, 하나님의 뜻을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다면 그 기도가 과연! 누구를 위한 기도이고, 무엇을 위한 기도였다는 말입니까? 지금 제가 여러분들에게 오랫동안, 많은 시간을 드려서 하나님께 기도드리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야고보의 무릎처럼 낙타의 무릎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그것이 저와 여러분들이 별명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토록 기도하여 비밀을 깨닫고,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발견하고 난 후에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뜻을,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여 자신의 감정대로 살아간다면 그것은 진정한 기도라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갈등하신 예수님의 선택은 무엇이었습니까?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의 심정을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십자가를 지셔야 하는 예수님의 심정을 생각해 보셨습니까? 그거야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니깐 간단한 것 아닙니까? 라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만 예수님은 완전한 인간이셨습니다. 그래서 무척이나 힘이 드셨다는 것을 우리는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본문 37-38절“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새 고민하고 슬퍼하사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고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마가복음 14:33-34절에는 마태복음보다 더 리얼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33.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실새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사 34.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고 기록했습니다. 여기서‘심히 놀라시며’를 원어로 분석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심히‘놀라다’는 원어는‘에크담베오’라는 단어입니다. 여기에서‘에크’라는 단어는 분리를 의미하는 전치사이고, 놀라서 말문이 막히다.는 뜻이 있는 담보스의 합성어가‘에크담베오’입니다. 그러니깐 예수님께서는 정신을 잃고, 말문이 막힐 정도로 놀란 심정의 상태였다는 것입니다.

  그런 예수님의 행동, 기도를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으로 나아가사“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괴로우셨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리고 기도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왔을 때, 제자들이 쿨쿨 자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네가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었더냐?’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는 또다시 기도하시러 가셨습니다. 앞 전에 한 시간 정도 기도하셨다고 했으니깐? 아마도 똑같이 한 시간 정도 기도하시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세 번씩이나 기도하셨다고 했습니다. 세 번씩 기도했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는가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도 자신의 질병을 위해 세 번 기도했다고 했지요. 예수님께서 간절히 기도했다는 것을 성경은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22:44절“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더라.”고 했는데,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더라는 이 구절에 대해 여러 가지 해석이 있을 수 있겠지만, 간단하게 말씀을 드리면 예수님께서 핏방울이 떨어지는 듯한 생명을 건, 간구를 드렸다는 의미입니다. 그것도 무려 세 번씩이나 기도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기도하신 내용은 무엇이었습니까? 여기에서 인간이신 예수님의 진면모를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내용 가운데 예수님께서 마음에 갈등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아니!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이루는 일에 갈등했다고 하면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오히려 예수님의 신성에 대해 모독하는 것 아니냐? 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도 했지만, 완전한 인간이신 예수님을 우리는 지금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충분히, 그러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기도 내용을 봅시다. 39, 42절“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인간이신 예수님의 모습이 나옵니다. 인간으로서 그 당시 최고의 형인 십자가의 죽음을 받아드리기가 쉬운 일이겠습니까? 그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얼마나 고뇌하셨는지를 우리는 잠시 전에 예수님의 행동을 통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시기를‘십자가라는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기도에 선택이 무엇이었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내가 원하는 것은 십자가의 잔을 내게서 옮겨주기를 원하는 것이지만, 나의 원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게 하옵소서. 라고 기도했습니다. 여기에서 예수님의 기도선택은 자신의 감정에 이끌려 결정하지 않으시고, 성령에게 이끌려 아버지의 원대로, 뜻대로 되기를 기도했고, 또한 아버지의 계획대로 죄인들을 위해 십자가를 지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기꺼이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 십자가 내지는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여 결정하지 않으시고, 성령에 이끌리어 올바르게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기도에 선택이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 뜻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나의 감정을 내려놓고, 나의 마음을 비우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최선을 따라서 순종하겠다는 마음을 갖게 되면 오히려 쉽게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기도는 뜻을 발견하고 난 후에 그 뜻을 우리들의 삶에 온전히, 실천하는 데 있습니다. 나의 뜻에 충실하지 말고, 나의 감정에 호소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순종, 선택하는 삶이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의 고뇌와 제자들의 꿀잠을 어떻게 보셨습니까? 앞으로 펼쳐질 일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그토록 고민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심히 놀라고, 심히 고민에 빠졌다고 했습니다. 원어 적으로는 볼 때 예수님께서 정신을 잃고, 말문이 막힐 정도에 심적 아픔이 있었던 것을 단어를 통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심지어 예수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기도하셨으며, 머리를 땅에 묻고는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며, 이토록 고뇌하셨건만, 그 제자들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그들을 예수님의 고뇌와 상관없이 쿨쿨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글쎄요. 제자들이 마음으로는 예수님과 함께 고뇌와 그 고통의 자리에 동참하고 싶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육신이 연약하므로 인하여 결국은 한 시간도 깨어 있지 못하고 쿨쿨 잠들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의 영적 상태는 어떠했는가? 예수님께서 그토록 아파하고, 괴로워할 때에 제자들은 과연 무엇을 했다고 했습니까? 그렇습니다. 쿨쿨 잠들어 있었습니다. 이것을 다른 표현으로 말하면 제자들이 영적으로 무뎌졌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표현으로 제자들이 잠을 잤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흔히 성경에서 잠들었다는 표현을 쓸 때는‘죽었다.’라고 말을 합니다. 예를 들면 나사라고 죽었을 때에도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깨우러 가자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나사로가 잠들었으면 스스로 알아서 일어날 텐데 구지! 깨우러 갈 이유가 어디 있겠느냐고 반문하자. 예수님께서는 나사로가 죽었느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어째든 잠들었다는 표현은 그다지 긍정적인 표현은 아닙니다. 우리들도 영적으로 병들었다. 죽었다고 표현할 때에는 영적 잠에 빠졌다고 표현하지 않습니까?

  성도 여러분! 영적 잠에 빠진 사람의 특징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감각이 없다는 것입니다. 옆에 사람이 고민하고, 아파하며, 괴로워하든 말든, 병들어 고통 속에 있어서 죽든 말든 아무 감각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냥! 나만 편안하고, 나만 좋으면 된다는 식입니다. 성도 여러분! 영적 매너리즘에 빠졌다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영적인 예리함, 영적인 능력이 상실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칼이 성능이 좋다는 말은 생선이든 동태이든 간에 무를 자르듯이 잘 자르면, 칼의 성능이 좋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칼날이 무뎌져서 생선을 자르는데, 마치 벌목하는 것처럼 생선을 자른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것이 칼입니까? 도끼입니까? 칼도, 도끼도 날이 예리하면 쓸모가 있지만, 예리하지 않고, 무디면 그냥 짐이고, 쓰레기에 불과한 것입니다. 아무짝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예수님은 너무나 괴로워서 그것도 세 번씩이 산에 올라가서 기도하시는데 제자들은 피곤하다는 핑계로 쿨쿨 잠만 자고 있다면 저와 여러분들은 그 제자들의 영적 상태를 어떻게 진단하시겠습니까? 베드로 요한 야고보의 상태가 이 정도라면 다른 제자들은 어떻겠습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영적 잠에 빠진 사람의 또 하나의 특징은 철저하게 인본주의(인간적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제 자고 쉬어라. 보라 때가 가까이 왔으니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에 베드로의 행동을 보면, 인간적으로 예수님을 구하려고 했습니다. 베드로의 경우는 칼을 뽑아 자기 따내는 예수님을 보호하겠다고 칼을 휘둘렀습니다. 그러다가 대제사장의 종인 말고의 귀를 자르고 맙니다. 예수님께서 칼을 칼 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칼로 망하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는 말고의 귀를 고쳐주셨다고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영적 매너리즘에 빠지고, 영적인 잠에 빠지면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 내 이웃이 무엇을 고민하는지, 옆 사람의 고통을 돌아보지 못합니다. 마치 제자들이 그렇게 고통하고 계시는 예수님 곁에 있으면서도, 제자들은 깊은 영적 잠에 빠져 영적 감각도 없고, 인간적인 냄새만 풀풀 풍기는 인생으로 전락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산 가족 여러분! 여러분들은 깊은 영적 잠에 빠져있으십니까? 아니면 영적인 예리함과 능력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며 그 뜻을 발견한 후 삶에 실천하며 살아가고 계십니까? 영적으로 깨어 있는 사람들은 이웃을 돌아보게 됩니다. 육체의 질병으로 죽어가고 있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십니까? 영적으로 병들어 죽어가고 있는 영혼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깨닫고 있으십니까? 평상시에도 괴로워하고, 신음하며, 나 좀! 살려 달라고 괴성을 치르며 외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여러분들의 귀에 저들의 철저한 울음소리가 들리고 있습니까? 우리 동경성산 교회가, 목사가, 성도가 깊은 잠에 빠져 이들의 소리를 듣지 못하고 있다면 이 얼마나 하나님 앞에 불충한 종들이 되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들 주변에 우리들의 따뜻한 관심을 기다리고 있는 이들이 있음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이번 주에 한 영혼이라도 우리의 손을 내밀고 도움을 구하는 이들에게 도움을 주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36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37 베드로와 세베대 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새 고민하고 슬퍼하사 38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 의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40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41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42 다시 두 번째 나아가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 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 의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고 43 다시 오사 보신즉 그들이 자니 이는 그들의 눈이 피곤함일러라 44 또 그들을 두시고 나아가 세 번째 같은 말씀으로 기도하신 후 45 이에 제자들에게 오사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보라 때가 가까이 왔으니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46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36.それから イエスは 弟子たちといっしょに ゲツセマネと いう所に來て,彼らに 言われた.「わたしがあそこに 行って 祈っている 間,ここにすわっていなさい.」
37.それから ペテロとゼベダイの子ふたりとを いっしょに連れて行かれたが,イエスは悲しみもだえ 始められた.
38.その とき,イエスは 彼らに 言われた.「わたしは 悲しみの あまり 死ぬほどです.ここを 離れないで,わたしと いっしょに 目をさましていなさい.」
39.それから,イエスは 少し 進んで 行って,ひれ伏して 祈って 言われた.「わが 父よ.できますならば, この 杯をわたしから 過ぎ 去らせてください.しかし,わたしの願うようにではなく, あなたのみこころのように, なさってください.」
40.それから,イエスは 弟子たちのところに 戾って來て,彼らの眠っているのを 見つけ,ペテロに 言われた. 「あなたがたは,そんなに,一時間でも,わたしと いっしょに 目をさましてい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のか.
41.誘惑に 陷らないように,目をさまして,祈っていなさい.心は 燃えていても, 肉體は 弱いのです.」
42.イエスは 二度目に 離れて 行き,祈って 言われた.「わが父よ.どうしても 飮まずには 濟まされぬ 杯でしたら,どうぞ みこころの とおりを なさってください.」
43.イエスが戾って來て ご覽になると 彼らはまたも 眠っていた.目をあけていることが できなかったのである.
44.イエスは, またも 彼らを 置いて 行かれ,もう 一度同じことをくり返して 三度目の祈りをされた.
45.それから,イエスは 弟子たちのところに 來て 言われた.「まだ 眠って 休んでいるのですか.見なさい. 時が 來ました.人の子は 罪人たちの 手に 渡されるのです.
46.立ちなさい.さあ,行くのです.見なさい.わたしを 裏切る者が 近づきました.」
Date : 2019-04-13 14:11:56    Read :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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