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고이와성산교회
 
 
 
2019/07/06
영적 전쟁 2 /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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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예수
Subject     6월 16일 / 선한 목자
성경:요10:7-18절,                              제목:선한 목자
설교:김 병철 목사, 일시:2019년 6월 16일(주일 낮 설교)

  서  론: 오늘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은혜의 말씀에 제목은“선한 목자”이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기를 원합니다. 이 말씀을 읽고 듣고 보는 가운데 성령하나님의 폭포수와 같은 은혜가 저와 여러분들 심령 가운데 임하시기를 존귀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요사이 취업문제가 아주 심각하다고 들었습니다. 한국의 경우는 젊은이들의 실업률의 최대의 200만 명을 넘었다고 하니 참으로 큰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나라를 위해서 기도해야만 합니다. 모 회사를 입사하려면 필기시험과 면접시험을 필수적으로 보게 됩니다. 입사에 있어서 필기도 중요 하지만 면접은 더 중요하다고 합니다. 대체적으로 면접관은 처음 만나는 면접자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본인 소개부터 하세요. 그때 자기 자신을 어떻게 소개할까? 자기 자신을 소개하는데, 우물쭈물, 아니면 쭈핏쭈핏 되고 자신을 소개를 못하면 보나마나 한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입니다. 면접관은 자신을 분명하게 소개하지 못하는 사람을 자신의 회사에서 일하게 하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자기 자신을 너무 과대포장을 하므로 낭패를 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여러분 스스로를 어떻게 평가를 하십니까? 아니 내가 타인에게 자신을 소개한다면 여러분들은 자신을 어떻게 소개하시겠습니까? 나는 어느 대학과 무슨 학과를 졸업했고, 현재 하고 있는 일은 무엇이며, 앞으로 어떤 부분에 관심이 있다는 등등에 설명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자기 자신을 분명하게 소개하는 것이 그다지 쉽지는 않습니다.

  앞에서 설명했던 것처럼 나는 어떤 대학을 나왔고, 현재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이며, 앞으로 자신의 관심 대상과 하고 싶은 일의 대한 것을 소개하는 것, 또한, 자신의 이력을 소개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않는 일이지만, 정작 내가 누구냐? 타인에게 자기가 누구인가를 소개한다는 것은 쉬운일이 아닙니다. 앞 전에 소개했던 것처럼 위에 이력를 자신이라고 소개한다면 그것은 자신의 겉모양, 스펙만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면접관은 이렇게 물어야 할 것입니다. 당신의 이력을 소개해 보세요. 현재까지 당신이 경험했던 일이 무엇이지를 소개하세요. 일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일이 무엇이고, 보람된 것이 있다면 소개해 보십시오. 아니면 당신이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무엇입니까? 이렇게 물어야겠지요. 물론 면전 할 때 이와 같은 질문들이 나올 것이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런 질문은 본인 자신을 소개하십시오. 라는 질문은 상당히 어려운 질문입니다. 철학적인 질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면접자들은 철학적인 질문 앞에서 자신의 이력을 말하거나, 스펙을 늘어놓습니다. 그것이 자신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에게 철학적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여러분은 자신을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만약에 면접관이 저에게 당신부터 소개하십시오. 라고 묻는다면 저는 이렇게 대답을 하겠습니다.“저는 죄인입니다.”,“동시에 하나님의 믿는 자이기이므로 의로운 자”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이처럼 인간은 이렇게밖에 자기 자신을 소개하고, 대답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본  론: 요한복음 10장에서 예수님은 스스로 자신을 소개하셨는데 정말 놀랍게도 인간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것 때문에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돌에 맞을 뻔한 이야기가 본문에 나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자기 자신을 어떻게 소개하고 있을까요?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삯꾼과 선한 목자를 비교, 대조하므로 예수님 자신을 들어내 보이셨습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서 은혜를 나누기를 소원합니다.      

  성경은 삯꾼은‘목자가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 양도 아니고, 이리가 오면, 위험한 상황이 도래하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기 때문입니다. 현대인들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보겠습니다. 모 회사가 있다고 합시다. 회사에는 오너와 직장인들이 있겠지요. 이 회사가 건재하기까지 사원들의 피나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회사가 건재하게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반면에 회사를 창업한 오너가 있었기 때문에 그 회사에 사원들이 일을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만약에 회사가 창업이 안 되었다면 그 회사에서는 사원들이 일할 수가 없겠지요. 그렇다면 회사의 오너와 그 사원의 마음가짐을 다시 생각해 봅시다. 회사의 창업자는 평생을 걸고, 그 회사를 일으켰습니다. 30-50년의 외로운 길을 걸어서 회사를 세웠습니다. 이 창업자는 그 회사가 자신의 목숨줄과 같습니다. 회사와 함께 살고, 회사와 망한다면 목숨을 걸어서라도 그 회사를 지키려는 사람이 바로 창업주, 오너입니다. 그렇지요. 그러나 그 회사의 몸을 담고 일을 몇 년 하지 않는 사원과는 생각이 많이 다를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어떤 면에서 다를까? 이 창업자는 회사가 위기가 오면 목숨을 걸어서라도 지키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일반 회사원들은 아하 회사가 위기가 찾아왔으니! 이제 우리에게도 불똥이 튈지도 모른다. 그러니깐? 다른 직장을 알아봐야겠다. 이것이 차이점입니다.

  성경에서 삯꾼은 목자가 아니다. 라고 말씀합니다. 본문을 12-13절을 보겠습니다.“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가고 또 헤치느니라 달아나는 것은 그가 삯꾼인 까닭에 양을 돌보지 아니함이나”고 했습니다. 저는 이 본문을 한 주간동안 생가가고 말씀을 준비하면서 개인적으로 나는 삯꾼이 아닌가?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은! 위기가 찾아오면 도망가려 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와 같은 위기가 찾아오면 그것을 모면해보려는 시도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것을 죄라고 규정하기란 어려울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위기가 올 때마다 도주하려고 한다면 우리 인생은 방랑자의 인생을 모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위기는 언제나 인생에서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때 저와 여러분들이 그 위기와 싸워 이길 생각을 해야하는 것입니다. 피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도망친다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를 그 위기는 끝까지 쫓아 올 것입니다. 때로는 남을 원망하고 불평하지는 않습니까? 스스로 자책하면서 내가 왜! 일본까지 와서 이 고생을 하는가? 별의별 악한 생각들을 사탄은 우리에게 던져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에는 이와 같은 삯꾼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삯꾼이 없는 사회, 삯꾼이 없는 가정, 교회, 공동체가 된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이리가 온다는 것은 위기가 찾아왔다는 말씀입니다. 위험수위가 넘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정상적인 목자라면 양을 버리고, 달아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요사이 가정에서도 자신의 낳은 자식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좀 잘 살고, 자녀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집 앞에 자녀를 버리는 사례가 비일비재합니다. 삯꾼이 아니라면 어떻게 해서라도 책임을 지려고 하는 자세가 필요한데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자녀들이 세상에서 이리에게 물어 뜨끼고, 상처 나서 마음과 육체가 피투성이로 범벅이 되어도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면 분명 나는 삯꾼일 확률이 높습니다. 여러분 자녀들은 영적으로 건강하십니까? 아니 오늘 저와 여러분들은 영적으로 병들어 있지 않습니까? 이럴 때일수록 함께 예배하고, 공동체 안에서 교제하므로 서로가 서로를 돌아보며, 격려하고, 위로하며, 치유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계속 사탄 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사탄은 언제나 우리에게 속삭입니다. 너의 문제는 너만이 해결 할 수 있는 거야! 그 해결책을 찾기 위해 계속 바꾸로, 외부로 떠돌아다니게 하는 것입니다. 한국 경우에 기도원으로 돌아다니게 합니다. 좋은 커피숖(카페)으로 전전긍긍하게 돌아다닙니다. 세상적인 교제로 만족을 얻을 수 없습니다. 영적인 교제만이 우리를 살릴 수 있습니다. 현재 위기와 고통를 피해서, 정신없이 일을 하므로 문제를 뒤로 하려 하지 마십시오. 그 영적인 문제는 그렇게 해서 해결되지 않습니다. 공동체 안으로 들어올 때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혹 잠깐은 그 위기에서 도망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것은 망상이요, 허상의 불과합니다. 사탄의 소리에 귀를 기울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랑의 공동체를 떠나 영적인 방황을 이제 끝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사탄은 삯꾼입니다. 사탄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삯꾼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과연 어떤 분이실까? 예수님께서 분명히 자기 자신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7절에“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고 하셨습니다. 8절에도 내가 문이다고 하셨습니다. 양의 문이라는 말이 무슨 의미일까? 정확한 의미는 양의 우리의 문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예수의 비유에서는 잘 등장하지 않는 생소한 개념입니다. 하지만 이 표현의 핵심은 ‘나는 선한 목자’라는 말과 같은 의미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팔레스틴에서 보통 볼 수 있었던 소규모 목장에서는 밤을 지낼 때 양의 우리의 문에 문짝을 달지 않고 목자가 그 문 입구에 누워서 밤을 지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목자를 통하지 않고는 누구든 양의 우리를 넘나들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내가 양의 문이다. 선한 목자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양의 문이라고 한다면 그 문으로 들어오고 나가면 어떤 혜택이 주어지는가?  본문 9-10절을 보겠습니다.“9.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10.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는다. 다른 표현으로 말하면 구원을 받데, 풍성한 구원의 혜택을 누린다는 의미입니다. 믿는 사람이든, 믿지 않는 사람이든 간에 풍성한 구원에 혜택을 누린다고 말하면 꼭 그것을 물질적으로 연관을 시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말도 틀리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물질적 축복을 누리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 큰 풍성한 축복이란 영적으로 주님으로부터 받는 놀라운 은혜, 혜택을 의미합니다.

  지난 시간에도 잠깐 언급했지만, 세상 사람들이 얻을 수 없는 영적인 축복 그것이 평안입니다. 평안하면 두 가지가 있습니다. 세상이 주는 평안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평안입니다.‘평안’단어 같지만 이 평안의 근원이 어디에서 오느냐에 따라서 그 평안에 질적인 내용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이 주는 평안을 다른 표현으로 말하면 편안입니다. 평안과 편안은 완전히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편안은 물질적으로, 환경적으로 편리하면 얻을 수 있는 것이 편안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주시는 이 평안은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이 평안은 물질이 없어도, 환경과 상관없이 주께서 주시면 하늘의 신령한 평안이 우리 심령 가운데 임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그 풍성한 혜택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27절“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스스로 나는 선한 목자이다. (11-18절) 선한 목자라함은 그가 어떻게 하셨기에 선한 목자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본문은 11절“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깐 자기 양들을 위하여 목자가 목숨을 건다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목숨을 버렸다는 말이 한번 나온 것이 아니라 4회나 나온다는 것입니다. 또한, 15절 선한 목자는 자신의 양을 알고, 양들도 선한 목자가 누구인지 알고, 그의 음성을 듣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알고, 듣는다는 말이 몇 차례 언급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마태복음 1:21절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고 했는데 여기에서 죄에서 구원한다는 말은 목숨을 걸고 건진다는 의미입니다.

  삯꾼과 비교의 대상이 될 수가 없는 것이 바로 선한 목자입니다. 위기상황이 발생하면 언제 도망갈까? 어떻게 이 위기를 모면할까? 내 양이 이리(사탄)에게 물려 뜨겨 죽든 말든, 피투성이가 되어서 살려달라고 애걸복걸하던지, 상관없이 자기 이익을 위해 도망치는 자가 바로 삯꾼인 것입니다. 그러나 선한 목자는 다릅니다.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한이 있어도 자신의 양을 구하겠다고 이리(사탄)와 싸우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사탄과 싸워 발뒤꿈치를 물려 상처를 입었지요. 창세기3:15절“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라고 했지요. 이 말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삼 일 동안 죽으셨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삼 일만에 다시, 부활하시므로 죽은 자의 첫 열매, 죽은 자의 첫 소망, 죽은 자의 첫 기쁨이 되신 줄 믿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삯군과 비교될 수 없을 만큼 전능하신 분이시고, 그 어떤 누구도 아버지의 손안에서 우리를 빼앗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하는 줄 믿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요한복음 10:28-29절“28. 내가 그들에게 영생 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29.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자신이 아버지와 하나이다. (30절) 이 말은 유대인으로써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말이었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갑자기 누가 나타나더니 내가 하나님이다. 내가 하나님과 동등한 자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것도 철저하게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는 자들 앞에서 자신이 하나님과 동등한 자라고 말한다면 미쳤다고 하던가? 아니면 저런 놈은 하나님을 모독한다고 해서 돌에 맞아 죽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참으로 이상하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얼마든지 지혜롭게 말씀하실 수 있었을 텐데 구지 이렇게까지 무리수를 띠면서 말씀하시면 유대인들이 폭동을 일으킬 것을 몰랐을까요? 돌을 들어 자신을 치려고 하실 것을 몰라서 이렇게 하셨을까요? 그런데 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일까?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어떻게 보면 사람들이 돌을 들어서 예수님을 치려고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번 뒤집어 생각해 본다면 예수님은 당시 누구인가?를 분명하게 그들에게 알려 주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 이후에 많은 사람들은 아무런 표적도 행하지 않은 세례요한에게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세례요한은 자신을 찾아온 사람들에게 이렇게 합니다.“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모두 참이라.”고 말을 했다는 사실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자기 자신이 누구인가를 이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정말 말도 안 되고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을 하셨지요. 당신 자신이 하나님이라는 말은 일반 사람으로도 납득이 되지 않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 부분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사실은 오늘 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원의 길이라고 말하면 다원 종교주의자들은 말합니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네. 너희 기독교인들의 그 오만과 아집과 독선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어째서 너희만 구원이 있다고 말을 하는 것이냐? 그렇지요. 그들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럴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기준은 오직 성경이기 때문에 성경이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에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사도행전 4:12절“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예수 이름 외에)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7.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8.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9.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10.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11.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12.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 가고 또 헤치느니라 13.달아나는 것은 그가 삯꾼인 까닭에 양을 돌보지 아니함이나 14.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15.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16.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17.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 이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느니라 18.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7.そこで,イエスはまた 言われた. 「まことに,まことに,あなたがたに 告げます.わたしは 羊の門です.8.わたしの前に 來た 者はみな,盜人で 强盜です.羊は彼らの言うことを 聞かなかったのです.9.わたしは 門です.だれでも,わたしを通ってはいるなら,救われます.また 安らかに出入りし,牧草を 見つけます.10.盜人が 來るのは,ただ 盜んだり,殺したり,滅ぼしたりするだけのためです.わたしが來たのは,羊がいのちを得,またそれを 豊かに 持つためです.11.わたしは,良い牧者です.良い牧者は 羊のためにいのちを 捨てます.12.牧者でなく,また,羊の所有者でない 雇い人は,狼が 來るのを 見ると,羊を 置き 去りにして,逃げて行きます.それで,狼は羊を奪い,また 散らすのです.13.それは,彼が 雇い人であって,羊のことを 心にかけていないからです.14.わたしは 良い牧者です.わたしはわたしのものを 知っています.また,わたしのものは,わたしを 知っています.15.それは,父がわたしを 知っておられ,わたしが 父を 知っているのと 同樣です.また,わたしは 羊のためにわたしのいのちを 捨てます.16.わたしにはまた,この圍いに 屬さないほかの 羊があります.わたしはそれをも 導かなければなりません. 彼らはわたしの 聲に 聞き 從い,一つの群れ,ひとりの牧者となるのです.17.わたしが 自分のいのちを 再び 得るために 自分のいのちを 捨てるからこそ,父はわたしを 愛してくださいます.18.だれも,わたしからいのちを 取った 者はいません.わたしが 自分からいのちを 捨てるのです.わたしには,それを捨てる 權威があり,それをもう 一度得る權威があります.わたしはこの命令をわたしの父ら受けたのです.」
Date : 2019-06-22 16:51:12    Read : 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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