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고이와성산교회
 
 
 
2019/10/03
사무엘하 강해 (11) 영적인 눈과 귀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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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예수
Subject     사무엘하 강해 (7)
성경:삼하 6:1-11절,  제목: 잃어버린 법궤를 찾으라.
설교: 김병철 목사,  일시:2019년 8월 25일(주일설교)

  서  론: 오늘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은혜의 말씀에 제목은“잃어버린 법궤를 찾으라.”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기를 소원합니다. 이 말씀을 읽고 듣고 보는 가운데 성령 하나님의 폭포수와 같은 은혜가 저와 여러분들 심령 가운데 넘쳐나시기를 존귀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이스라엘 국민(유대인)들이 절대 잊지 않는 세 곳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군인 중에서 장교로 임관할 때, 반드시 찾는 세 곳이 있다고 합니다. 그곳은 다름 아닌‘야드바심’예루살렘에는 독일 나치에 의해 희생된 600만 유대인을 추모관입니다. 야드바심이란󰡐기억󰡑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유대인들은 민족이 참혹한 학살을 당한 것을 기억하고 절대 잊지 말자는 뜻으로 이 이름을 지었다고 합니다.또 하나는 주후 70년경 로마 티토 장군에 의해 예루살렘 무너졌습니다. 그리고 모든 성전 벽을 허물었는데 서쪽 벽만을 남겨놓았습니다. 로마가 이 엄청난 성벽를 무너뜨렸다는 것을 기념하기 위해 남겨놓은 통곡의 벽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맛사다.’고원입니다. 이곳은 이스라엘이 최후의 전쟁을 했던 장소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절대 잊지 않는 이유는 이스라엘이 힘이 없어서 이와 같은 처참하게 되었다는 것을 잊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요사이 현대인들은 기념일을 좋아합니다. 개인적으로 연예한 지 100일 기념, 약혼 기념, 결혼기념, 결혼 5, 10, 20주년 기념을 챙깁니다. 자식을 낳은 백일기념, 돌 기념, 일본의 경우는 7,5,3 기념일을 잡아서 절에 가고, 신사에 가서 예식을 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 부분을 함께 생각하면서 은혜를 나누기를 소원합니다.

  다윗이 통일 왕이 되어 공식적인 첫 사업이 무엇이었습니까? (1-5절) 본문 2절“다윗이 일어나 자기와 함께 있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바알레 유다로 가서 거기서 하나님의 궤를 메어 오려 하니 그 궤는 그룹들 사이에 좌정하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왕이 된 이후에 첫 사업으로 하나님의 궤를 다윗성으로 모셔오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궤란 소위‘법궤’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 법궤가 과거에 어디에 있었는가? 사무엘상 4장은 엘리가 대 제사장 겸, 사사였던 시기였습니다. 당시 사무엘은 어린 소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때, 이스라엘과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패하므로 약 4천명ㅍ가량이 죽었습니다. 이스라엘 군인들은 진영으로 돌아와 장로들과 의논 끝에 하나님의 법궤를 모시고 나아 싸우면 우리가 반드시 이길 것이라고 결론 내고는 하나님의 법궤를 홉니와 비느하스가 모시고 전쟁에 나갔다가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고, 하나님의 법궤도 블레셋 군대에게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그리고는 이 하나님의 법궤가 블레셋의 신당에 모셔두었다가 신당에서 엄청난 문제가 생겨지게 되지요. 블레셋 다곤 신당에 하나님의 궤를 안치시켰다고 다곤 신이 팔이 부러지고, 목이 부러지는 사건으로 인하여 그들이 두려워서 하나님의 궤를 벧세벧스으로 갔다가 기럇여아림 아비나답의 집에 무려 20년 동안 머물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깐 하나님의 법궤는 블레셋 땅에서 출발하여 하나님의 집으로 들어오기까지 무려 70년 동안이나 떠돌아다녔다는 것입니다.

  사울이 40년 동안 통치하면서 단 한 번도 여호와의 궤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중심에 통치를 하지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이스라엘 통일 왕 된 이후 첫 공식적인 사업으로 하나님의 법궤를 모셔오는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무려 이스라엘에서 뽑은 무리가 삼만 명이나 되었습니다. 왜! 그렇게 많은 사람을 뽑은 것일까? 이것은 아마도 바알레 유다는 블레셋과의 인접한 곳이기 때문에 혹 전쟁이 있을 것을 대비하여 군인들과 함께 정예부대 요원들을 뽑은 것입니다. 5장에서 블레셋과의 전쟁이 있었던 것을 감안 하면서 생각하면 좋을 듯싶습니다. 이처럼 다윗은 이스라엘 왕이 표면적으로는 자신이 왕이지만 실질적인 왕은 자신이 아니라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잃어버렸던 법궤를 찾았던 다윗처럼 저와 여러분들도 잃어버렸던 하나님의 법궤를 찾아야 할 줄 믿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자신들에게 적용을 해 봅시다. 잃어버린 하나님의 법궤를 다시 찾는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하나님의 중심에 삶을 산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내 중심이 아니라, 내 생각과 계획 앞서 하나님의 중심적으로 삶을 계획하고, 생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세계의 중심을 이스라엘로 생각합니다. 이스라엘의 중심은 예루살렘이고, 예루살렘의 중심은 성전입니다. 성전의 중심은 지성소 그리고 지성소의 중심은 법궤입니다. 그렇다면 법궤의 중심은 무엇인가? 여호와의 말씀입니다. 하나님 중심이란 말씀 중심의 삶을 의미합니다. 영적 우선순위, 하나님 영광 우선순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따져보고, 그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 잃어버렸던 하나님의 궤를 찾는다는 의미입니다. 예수 중심, 말씀 중심의 삶으로 전환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하나님의 궤를 모셔오는데 다윗이 준비한 것은 무엇인가? (1-5절) 정예 요원 삼만 명을 준비시켰습니다. 일단은 법궤를 모셔오는데 사람이 필요했을 뿐 아니라, 혹 블레셋과 인근접경 지역이기 때문에 전쟁이 일어날지 몰라서 정예 요원들을 준비시켰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궤를 모셔 올 때, 철저히 준비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궤를 모셔오는데 새 수레를 준비했습니다. 그냥 쓰던 수레가 아니라,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짐을 싫은 적이 없는 새 수레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다윗이 하나님의 궤를 모셔오고 싶었던 마음을 소개하는 동시에 하나님이 궤를 모시는 데 최선을 다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또한, 잣나무로 만든 여러 가지 악기들을 총동원하여 여호와의 성호를 찬송토록 했다는 것입니다. 그 악기 종류로 말하면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양금과 제금으로 여호와 앞에서 연주하도록 했습니다. 여러분들께서 한번 상상을 해보십시오. 삼만 명의 정예 요원들이 하나님의 법궤를 중심으로 앞뒤, 좌우로 호위하고, 법궤를 따라가면서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이 마치 왕의 행렬하는 모습, 그런 느낌이 들지 않습니까? 이처럼 다윗은 하나님의 궤를 모셔오는 데 최선을 다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궤를 모셔오는데 다윗이 실수한 것은 무엇입니까? (3-4절) 다윗이 통일왕국의 왕이 된 후 첫 공식적인 사업으로 하나님의 궤를 모셔오는 거룩한 사역을 시작하였습니다. 정말 칭찬받을 만한 일이고, 축복받을 만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다윗의 과다한 열정이 하나님과 웃사가 충돌하는 일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이냐? 본래 하나님의 궤를 이동할 때에는 네 명의 제사장들이 앞뒤에 서서 어깨에 메어 이동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새 수레에 하나님의 궤를 싫고, 소가 새 수레를 이끌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이때, 분명 제사장들도 있었을 텐데 어째서 그 사실을 다윗에게 알려주지 않았을까? 제사장들이 몰랐을까? 아니면 알았지만, 지난번에도 블레셋에서 벧세벧스로 올라갈 때도 소가 수레를 끌지 않았는가? 그때도 아무 문제가 없었으니 이번에도 괜찮을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 타성에 젖은 생각 때문에 다윗에게 말을 하지 않은 것인가? 정확하게는 알 수 없습니다. 어째든, 다윗의 열정은 좋았으나 그 열정이 오히려 하나님의 방법을 무시하는 결과를 초래했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요사이 언어로 표현하자면 하나님의 방법은 아날로그 방법이었습니다. 그러나 손쉽고, 편안하며, 더 효율적인 디지털 방법을 택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거룩한 일은 손쉽고, 편안하며, 더 크고, 경제적이며, 더 효율적인 것을 감안하여 일하는 것이 꼭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방법은 성령님을 통해서 일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성령님을 제쳐 놓고, 인간의 생각과 계획만으로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거룩한 사역을 하는 데 있어서 계획이 필요하고, 전략도 필요하며, 물질과 자원과 인재도 필요하지요. 주님의 거룩한 사역에 필요한 것이 한두 가지겠습니까? 그러나 절대 잊어서는 안 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성령 하나님의 절대적인 도움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면 우리는 매번 실패하고 말 것입니다. 설령 인간이 보기에 성공한 것 같고, 많은 숫자가 모이고, 효율적이며, 유익했다고 합시다. 유익하면 되지 않느냐? 성공했으면 되지 않느냐? 효율적으로 일을 마치고, 성공리에 마쳤으면 되지 뭐가 또 필요하겠느냐? 라고 물으실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볼 때, 성공했는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보시는, 입장에서는 실패한 것입니다. 실패 정도가 아니라, 완전한 실패입니다. 성령님의 도움없이 인간의 능력으로 한 사역에 무슨 역사가 나타나겠습니까?

  하나님의 거룩한 사역은 하나님께서 행하신다. (6-8절)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사역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것 맞습니다. 인정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들은 무엇을 하는가? 우리들은 단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구경만 하면 되는가? 이렇게 오해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나무꾼의 비유를 들자면 그렇습니다. 나무꾼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의 도구입니다. 도끼 손잡이도 있고, 도끼가 있습니다. 또한, 도끼날을 가는 숯 돌도 있을 것입니다. 숯 돌에 도끼를 갈고 나면 잘 갈렸는지, 안 갈렸는지를 알려면 물에 도끼를 담그고 도끼 칼날을 보아야 하지 않습니까? 이처럼,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나무꾼이시고, 우리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도구로 쓰임을 받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나무꾼이 나무를 베었다고 도끼가 내가 나무를 잘랐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단지 우리는 도구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오늘 본문으로 돌아가 봅시다.

  하나님의 궤를 옮기는 방법이 아무리 잘못되었고, 웃사는 아무리 좋은 의도로 행하였다손치더라도 소가 뛰어 수레에서 하나님의 법궤가 떨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궤를 죄인인 웃사가 잡아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궤가 떨어진들 하나님께서 알아서 하셨을 것입니다. 이 부분을 옛 성경에서는‘하나님과 웃사가 충돌 하였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공의와 죄가 충돌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일을 죄인인 인간이 그 선을 넘어서는 안 된다는 교훈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으며, 죄인은 죄로 말미암아 죽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참모습이지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와 같은 존재들을 위해서 당신의 하나밖에 없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셔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게 하신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이들은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웃사가 아무리 좋은 의도로 행하였다 하더라도 죄인인 인간이 하나님의 궤를 만져서는 안 될 그 선을 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죽음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비방하고, 믿는 사람들을 비방했다고 하지만 선을 넘어서는 안 되는 것이 있지요. 그것은 다름 아닌 성령님을 모독죄입니다. 이것은 죄 사함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님께서 행한 일을 마치 귀신이나, 사탄인 행한 것으로 전락시키는 죄입니다. 웃사는 곧 하나님을 모독하는 죄에 해당하는 것이었습니다. 죄인이 하나님을 만지는 행위입니다.

  현존하시는 하나님을 보고 두려워했던 다윗입니다. (9-11절)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은 두려워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는 권력을 두려워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국민의 힘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주겠고, 그들이 회당에서 너희를 채찍질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너희를 넘겨 줄 때, 우리가 무슨 말을 할지를 염려하거나, 두려워하지 말라 눈에 보이지 않으시는 성령님께서 너희에게 할 말을 가르쳐줄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장차 형제가 형제를 아버지가 자식을 죽는 데 내 주며, 자식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할 것이다. 또한, 힘 있는 권력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영혼과 육체를 멸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두려워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 땅에서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높은 위치에 있을 때 겸손하고, 많이 가졌다고 자랑하지 말며, 남보다 더 많은 재능이 있다고 교만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맡기신 대로 더 많은 것을 요구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늘 겸손한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언제 겸손해질 수 있을까요? 예를 든다면 본인 스스로가 똑똑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자신보다 월등히 똑똑한 (천재)자 앞에 가면 고개를 숙이지 않을까요? 스스로가 많이 (부를 축적)가졌다고 하지만, 자기와 비교할 수 없는 갑부 앞에 서게 되면 꼬리를 내리지 않을까요? 남들에게 밀리지 않을 정도의 외모를 가졌던 사람은 은근히 자기 자신을 들어내고 싶을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잘 생긴 미남, 미녀 앞에 서게 될 때, 조금은 겸손해지지 않을까? 학벌 자랑하고, 집안 자랑하는 사람들이 명문 가문에, 명문 대학을 나와 골고루 갖춘 집안을 보면 부러워한 나머지 자괴감마저 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죄인이 판사 앞에 선다면 한없이 작아진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 앞에 인간이 서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공의로우신 분 앞에 일점일획의 죄도 용납되지 않을 것입니다. 스스로 욥은 의롭다고 여겼지만, 실질적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는 아무대답도 할 수 없습니다. 다윗도 나름대로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 앞에서 몸부림치듯 산다고 했으나 본문에서 웃사가 여호와 하나님과 충돌하므로 그 자리에서 죽은 사건을 보았습니다. 다윗은 현존하시는 하나님을 직접 경험하고는 두려워 떨었습니다. 그리고는 다윗성으로 하나님의 법궤를 모셔오는 것을 중단합니다. 어찌 감히 나 같은 죄인이 하나님의 궤를 모실 수 있겠는가? 그리고 하나님의 궤는 가드 사람의 집인 오벧에돔의 집에 삼 개월간 머물렀다고 했습니다. 삼 개월 동안 머무는 동안에 하나님께서 그 집에 복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살면서 하나님을 의식하지 못한 체 살아갈 때가 얼마나 많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저와 여러분과 함께 현존해계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어디 먼 하늘나라,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그 어딘가에 계시는 것으로 오해할 때가 있습니다.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계시는 그곳에 살아계시는 분이십니다. 다윗은 현존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며 두려워했습니다. 현대인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 두려워하지 않습니까? 눈에 보이시지 않으니깐?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에 살아계신다고 이론으로는 인식하지만, 실질적으로 피부로 느끼지 않기 때문에 그분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주님은 오늘 예배하는 이 장소에도 계시고, 저와 여러분들이 살아가고 있는 가정뿐 아니라 삶의 현장, 그곳에도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의식하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종교개혁자였고, 학자였으며, 목회자이고, 심지어 정치가였던 칼빈은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코람데오’하나님 앞에서 삶을 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성경이 가라고 한곳까지 가고, 성경이 서라는 곳에 멈추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1.다윗이 이스라엘에서 뽑은 무리 삼만 명을 다시 모으고 2.다윗이 일어나 자기와 함께 있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바알레 유다로 가서 거기서 하나님의 궤를 메어 오려 하니 그 궤는 그룹들 사이에 좌정하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라 3.그들이 하나님의 궤를 새 수레에 싣고 산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서 나오는데 아비나답의 아들 웃사와 아효가 그 새 수레를 모니라 4.그들이 산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서 하나님의 궤를 싣고 나올 때에 아효는 궤 앞에서 가고 5.다윗과 이스라엘 온 족속은 잣나무로 만든 여러 가지 악기와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양금과 제금으로 여호와 앞에서 연주하더라 6.그들이 나곤의 타작 마당에 이르러서는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손을 들어 하나님의 궤를 붙들었더니 7.여호와 하나님이 웃사가 잘못함으로 말미암아 진노하사 그를 그 곳에서 치시니 그가 거기 하나님의 궤 곁에서 죽으니라. 8.여호와께서 웃사를 치시므로 다윗이 분하여 그 곳을 베레스웃사라 부르니 그 이름이 오늘까지 이르니라 9.다윗이 그 날에 여호와를 두려워하여 이르되 여호와의 궤가 어찌 내게로 오리요 하고 10.다윗이 여호와의 궤를 옮겨 다윗성 자기에게로 메어 가기를 즐겨하지 아니하고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으로 메어 간지라 11.여호와의 궤가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에 석 달을 있었는데 여호와께서 오벧에돔과 그의 온 집에 복을 주시니라
1.ダビデは 再びイスラエルの 精銳三万をことごとく 集めた.
2.ダビデは ユダのバアラから 神の箱を 運び上ろうとして,自分につく すべての民とともに 出かけた.神の 箱は,ケルビムの上に 座しておられる 万軍の 主の名で 呼ばれている.
3.彼らは,神の箱を,新しい 車に載せて,丘の上にある アビナダブの家から 運び 出した.アビナダブの 子,ウザと フヨが 新しい車を 御していた.
4.丘の上にある アビナダブの家からそれを 神の箱とともに 運び出したとき,アヨフは 箱の前を 步いていた.
5.ダビデと イスラエルの全家は 歌を 歌い,立琴,琴,タンバリン,カスタネット,シンバルを 鳴らして,主の前で,力の限り 喜び踊った.
6.こうして 彼らが ナコンの打ち 場まで 來たとき,ウザは 神の箱に 手を伸ばして,それを 押えた.牛がそれをひっくり 返しそうになったからである.
7.すると,主の怒りが ウザに 向かって 燃え 上がり,神は,その不敬の罪のために,彼を その場で 打たれたので,彼は 神の箱のかたわらのその 場で 死んだ.
8.ダビデの心は 激した.ウザによる 割りこみに 主が怒りを 發せられたからである.それで,その場所は ペレツ·ウザと 呼ばれた.今日もそうである.
9.その日 ダビデは 主を 恐れて 言った.「主の箱を,私のところにお 迎えすることはできない.」
10.ダビデは 主の箱を 彼のところ,ダビデの町に移したくなかったので,ガテ人 オベデ·エドムの家にそれを 回した.
11.こうして,主の箱は ガテ人 オベデ·エドムの 家に 三か月とどまった.主は オベデ·エドムと 彼の全家を 祝福された.
Date : 2019-09-13 11:55:32    Read :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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