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고이와성산교회
 
 
 
2023/09/17
열왕기하 강해 (22) / 끊임없는 개혁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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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예수
Subject      예루살렘 성에 오르신 예수님 / 막11:1-11절
성경: 막11:1-11절 제목: 예루살렘 성에 오르신 예수님
설교: 김병철 목사,     2023년 4월 2일(주일 낮 설교)

  서  론: 오늘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은혜의 말씀에 제목은 "예루살렘 성에 오르신 예수님"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기를 소원합니다. 이 말씀을 읽고 듣고 보는 가운데 성령 하나님의 폭포수와 같은 은혜가 임하시기를 존귀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16세기 영국의 순교자 가운데 존 후퍼라는 이가 있습니다. 그는 성직자의 결혼을 주장한 것과 사제가 떡과 포도주를 놓고 축사하면 그것이 그리스도의 몸으로 변한다는 화체설을 부인하였다는 죄목으로 1553년 런던 탑에 투옥되었습니다. 1년 반 이상 감옥에 갇혀 있던 그에게 한 친구가 찾아와서 이렇게 권하였습니다. "인생은 달콤한 것이지만 죽음은 쓰디쓴 것이네. 이 점을 생각하고 고집을 버리게나." 적당하게 타협하여 죽음을 피할 것을 종용했던 것입니다. 후퍼는 깊이 생각한 후 친구에게 "내세에서의 생은 이생보다 더 달콤하다네. 그리고 지옥의 고통은 죽음보다 더 쓰다네" 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결국 그는 얼마 후 화형에 처해 졌지요. 죽음의 순간을 맞게 된 후퍼는 사형 집행관들을 위해 복을 빌어 준 후,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아주소서"라고 외친 다음 순교의 제물이 되었습니다. 그의 순교는 영국교회가 개혁의 틀을 만들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었습니다. 신앙은 세상과의 타협이 아니라, 진리를 수호할 것인지, 진리를 버릴 것인지에 대한 영적 싸움이 바로 신앙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난과 환란이 있다고 해서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버릴 수는 없지는 않습니까?

  본  론: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올리브산 근처 벳파게와 베다니아에 이르렀을 때, 예수께서는 두 제자를 보내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맞은편 마을로 가 보아라. 그곳에 가면 어린 나귀 새끼 한 마리가 매여 있을 것이다. 그것을 풀어서 끌고 오너라. 만일 누가 왜 이렇게 하느냐고 묻거든 주님이 쓰신다고 하라 그러면 곧 풀어서 보내 줄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새끼 나귀를 끌고 왔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자기들의 겉옷을 새끼 나귀 위에 얹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수 많은 사람들이 겉옷을 벗어 길 위에 펴놓았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들에서 나뭇가지를 꺾어다가 길에 깔았습니다. 그리고 앞서, 가는 사람들과 뒤따라오는 사람들이 종려 가지 나무 가지를 흔들며 환호했습니다. "호산나!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송을 받으소서!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가 온다. 만세! 높은 하늘에서도 호산나!"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전에 들어가셨을 때는 이미 날이 저물었습니다. 그래서 열 두 제자와 함께 베다니아로 가셨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종려 주일입니다. 그리고 내일부터는 고난주간입니다. 본문 내용은 예수님께서 고난을 받으시기 위해 예루살렘 입성하시기 위해 나귀를 타시고 백성들에게 환호을 받으며 예루살렘성에 입성하시고 성전을 정화하는 내용입니다. 이 내용을 함께 생각해 보면서 은혜를 나누기를 소원합니다. 과연 예수님은 어떤 분이셨을까? 예수님은 무슨 생각을 하고 계셨고, 백성들과 군중들은 어떤 생각으로 주님을 환호했을까? 함께 생각해 봅시다.  

  첫째, 자신이 이 땅에 오신 이유를 미리 알고 계시는 예수님이십니다. (1-6절)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를 미리 알고 계셨던 분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되어질 일을 알고 계셨던 분이라는 것입니다. 이와 비슷한 내용이 마태복음17:24-27절에 나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가버나움에 이르렀을 때, 성전 세를 걷는 사람들이 베드로에게 와서 물었습니다.“당신네 선생님은 성전 세를 내지 않습니까?”베드로가 대답했습니다. “내십니다.” 베드로가 집에 들어가자, 예수님께서 먼저 말씀을 꺼내셨습니다.“어떻게 생각하느냐? 시몬아, 이 세상의 왕들은 관세와 세금을 누구에게서 받느냐? 왕의 자녀들한테 서냐? 아니면 다른 사람들한테 서냐?”베드로가 대답했습니다.“다른 사람들에게서 입니다.”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그러므로 왕의 자녀들은 세금을 낼 필요가 없다. 그러나 성전 세 걷는 사람들을 자극해서는 안 되겠다. 그러니 호수에 가서 낚시를 던져라. 그리고 첫 번째 낚은 물고기의 입을 벌려 보아라. 은돈 한 개가 있을 것이다. 그것을 가져다가 성전 세 걷는 사람에게 나와 네 몫으로 주어라.”"고 하십니다. 이때도 베드로는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행했습니다. 호수가에 가서 낚시를 던졌습니다. 그리고 고기를 낚았습니다. 첫 번째 고기 입을 열어보았더니 정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은 한 개가 있었습니다. 이와같이 베드로가 이미 예수님께서 어떤 분인가를 경험했습니다.

  주님께서는 미리 되어질 일을 알고 계십니다. 이와 같은 이야기를 하자면 오늘 하루종일 해도 모자랄 것입니다. 요한복음 1:45-49절 "그러나 나다나엘은 빌립에게 “나사렛에서 뭐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습니다. 빌립은 “와서 보아라” 하고 대답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여기 참 이스라엘 사람이 있다. 이 사람에게는 거짓된 것이 하나도 없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다나엘은 예수님께 “저를 어떻게 아십니까?”하고 물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나다나엘은 예수님께“선생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이스라엘의 왕이십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다나엘에게“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고 말해서 나를 믿느냐? 그러나 너는 그것보다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다”라고 대답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내가 너희에게 진리를 말한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천사들이 인자 위에서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본문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길거리에 가면 아무도 타지 않은 새끼 나귀가 걸려 있을 것이다. 그러면 그것을 풀어 가지고 와라 나귀를 풀 때에 누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느냐 하면 주께서 쓰시겠다고 하라 그러면 보낼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 앞으로 되어질 일과 당신께서 직접 행할 일까지도 다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고난을 받으실 이야기도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십자가에서 고통 당하실 것을 벌써 감지하고 계셨습니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비난과 조롱이 있을 것이라는 이 땅에 오실 때부터 확실히 알고 오셨다는 것입니다. 나다나엘이 무화과나무 밑에서 고민하는 모습을 이미 보시고 알고 계셨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무엇 때문에 고민하고 아파하며, 힘들어하시는지를 누구보다 더 잘 알고 계시는 분이 창조주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믿습니까? 그 분은 나를 만드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 나보다 나를 잘 아시는 아버지 내 모습 이대로 사랑하시네.......

  둘째, 고난을 받기 위해 예루살렘 성으로 오르신 만 왕의 왕 예수님이십니다. (7-10절)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 성으로 입성하실 때에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놀라운 일을 행하시기 위해 무엇인가 결단한 것으로 알고, 예수님을 환영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고난을 받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십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예수님을 자신의 이익의 도구로 사용하려고 했습니다. 본문에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무엇인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어딘가 모르게 세팅이 맞지 않는 느낌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 성으로 입성하시는데 제자들과 주변의 있는 사람들은 마치 세상 왕을 추대하는 모습을 연상시키지 않습니까? 7-10절을 살펴봅시다. "7.나귀 새끼를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어 놓으매 예수께서 타시니 8.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의 겉옷을, 또 다른 이들은 들에서 벤 나뭇가지를 길에 펴며 9.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자들이 소리 지르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10.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의 생각과 인간의 바램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음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인간들의 예수님을 유대의 왕으로 삼으려고 했지만, 예수님께서는 한 나라의 왕이 아닌 만 왕의 왕이심을 알리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인간들은 예수님을 한 나라의 왕으로 국한 시키려고 했습니다. 유대의 왕, 또한, 정치적 지도자로 세우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의 죄를 사하시고, 그 죄에서 자유를 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본문을 한 번 깊이 살펴봅시다.
1)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어 놓으매 (자신들의 겉옷을 위에 걸쳤다는 것은 존경의 표시입니다.)
2)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의 겉옷을 (길에 폈다는 것은 환영의 표시입니다.)
3)다른 이들은 들에서 벤 나뭇가지를 길에 펴며 (왕이 가는 길을 표시하는 것입니다.)
4)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자들이 소리 지르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었다.)
5)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이스라엘을 로마로부터 정치적 해방, 이스라엘 회복을 노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들의 바램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의도는 어떻습니까? 전혀 이 광경과는 맞지 않는 모습입니다. 사람이 한 번도 타 보지 않은 새끼 나귀를 타고 올라가셨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예수님께서 세상의 왕으로 오셨다면 최소한 말이나 마차를 타고 올라가셔야 맞습니다. 당시 로마 군인들이 전쟁을 하고 승리하면 개선문을 통과할 때를 상상해 보십시오. 백 말을 타거나, 백말이 끄는 마차를 타고 개선문을 통과합니다. 그러면 백성들이 나와서 환호성을 외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러나 예수님은 어떠신가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습으로 새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 성으로 입성하는 것입니다. 무슨 조랑말을 타고 오르시는 것도 아니고 새끼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는 모습이 어째 초라하기까지 합니다. 로마사람들이 보면 무슨 코메디를 한다고 여길지도 모릅니다. 어째든,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전에 들어가셔서 모든 것을 둘러보시고 때가 이미 저물매 열두 제자들과 함께 베다니에 가셨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로마 정부로부터 자신들을 해방시켜 줄 메시아, 구세주로 여겼을 것입니다. 한 마디로 사람들을 선동하여 다윗의 왕권을 회복할 것으로 기대했다는 것입니다.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아무것도 행하시지 않으시고 예루살렘을 둘러보시고 날이 이미 저물매 베다니에 제자들과 함께 가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사람들은 다음날 또 기대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실 때에 조금은 피곤해서 어제는 그냥 잠을 주무시고 이제 새롭게 무엇인가를 시도하실 것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또, 다시 무리의 기대를 엎으셨습니다. 성전 들어가셔서 그 유명한 성전을 정화하시는 일을 하셨습니다. 성전을 더럽힌 사람들을 책망하고 성전의 본질을 망가트리면서까지 장사하는 자들의 상을 엎으시고 채찍으로 그들을 호되게 야단을 치셨습니다. 이때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아! 우리가 생각한 예수가 아니구나! 우리가 착각한 것 같다. 라고 생각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하는 사건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만약의 예수님께서 이때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폭동을 일으켰다면 예수님은 유대인의 혁명가로만 남았을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그분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신이 지고 가야 할 십자가를 지시고 그 모진 고통을 겪으시면서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놓이는 수모를 겪으시고 결국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이루셨습니다. 그리고 유대인의 왕으로 남지 않으시고 인간의 죄를 해결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므로, 위대한 만 왕의 왕으로서의 진면모를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들은, 인간들은 예수님을 유대의 왕으로 모시려고 했지만, 예수님은 한 나라의 왕이 되는 것을 거부하셨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자신의 삶의 한 일부분의 주인으로 모시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삶의 일부분이 아니라, 삶의 전부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한 나라의 왕이 아니라,만 왕의 왕이십니다. 우리들의 삶에 한 일부분을 다스리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삶 전체를 다스리시는 원하시는 만 왕의 왕이십니다. 아멘이십니까? 우리의 개인과 가정과 학교, 직장, 사업, 교회, 사회, 교육, 국가, 정치까지도 뿐만 아니라 전 우주를 통치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알리시기를 원하셨다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그래서 저와 여러분들이 이 땅에 살면서 그 하나님의 나라, 전 우주를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모르는 백성들에게 증거 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셋째, 예언,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서 새끼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 오르신 예수님이십니다. (7-8절)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시는 것이 자신의 뜻이 아닌 오래전부터 예언하신 예언을 이루시기 위해서입니다. 새끼 나귀를 타신 것도, 예루살렘 성에 오르신 것도 다름이 아닌 바로 말씀을 성취하시기 위해서 올라가셨다는 사실입니다. 스가랴 9:9절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은 무려 예수님께서 오시기 B.C.520년 전에 기록된 말씀입니다. 무려 500년 전에 기록된 말씀을 이루시기 위해서 주님께서는 나귀 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신 줄 믿습니다. 자신의 뜻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500년 전부터 예언된 말씀을,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이 땅에 오셔서 그 고난과 십자가와 그 수모를 겪으셔야만 했습니다. 얼마든지 만왕의 왕답게 백 말을 타시고, 백마가 끌고 가는 마차를 타고 오르실 수 있으신 분이시지만, 예수님께서는 말씀을,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새끼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 성으로 오르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이와같은 행동이 훨씬 더 당당하고 멋이 있지 않습니까? 만 왕의 왕답게 당당하게 예언을 성취하시기 위해 스스로 초라해 지시면서까지 말씀을 철저히 지키셨습니다. 아멘.

  말씀을 맺기를 소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미리 다 알고 계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저와 여러분들의 형편과 사정을 모두 알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또한, 고난받기 위해 예루살렘 성으로 오르신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이십니다. 우리의 생각과 다르다고 원망과 불평을 늘어놓지 않기를 바랍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의 전부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들어내기 보다는 오래전 예언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창피를 무릅쓰고 예루살렘 성을 새끼나귀를 타고 올라가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십니다. 그 분은 나의 왕이십니다. 일부분의 왕이 아니라 저와 여러분들의 인생 전체를 주장하시기를 원하시는 왕이십니다. 아멘

1.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감람 산 벳바게와 베다니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
2.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곧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
3.만일 누가 너희에게 왜 이렇게 하느냐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이리로 보내리라 하시니
4.제자들이 가서 본즉 나귀 새끼가 문 앞 거리에 매여 있는지라 그것을 푸니
5.거기 서 있는 사람 중 어떤 이들이 이르되 나귀 새끼를 풀어 무엇 하려느냐 하매
6.제자들이 예수께서 이르신 대로 말한대 이에 허락하는지라
7.나귀 새끼를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어 놓으매 예수께서 타시니
8.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의 겉옷을, 또 다른 이들은 들에서 벤 나뭇가지를 길에 펴며
9.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자들이 소리 지르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10.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11.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전에 들어가사 모든 것을 둘러 보시고 때가 이미 저물매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베다니에 나가시니라

1.さて,彼らが エルサレムの近くに 來て,オリ―ブ山の ふもとのベテパゲと ベタニヤに 近づいたとき, イエスは ふたりの弟子を 使いに 出して,
2.言われた.「向こうの村へ行きなさい.村にはいるとすぐ,まだだれも 乘ったことのない,ろばの子が, つないであるのに 氣がつくでしょう.それをほどいて,引いて來なさい.
3.もし,『なぜそんなことをするのか.』と 言う 人があったら,『主がお入用なのです.すぐに,またここに 送り 返されます.』と 言いなさい.」
4.そこで,出かけて見ると,表通りにある 家の戶口に,ろばの子が 一匹つないであったので,それをほどいた.
5.すると,そこに 立っていた 何人かが 言った.「ろばの子をほどいたりして,どうするのですか.」
6.弟子たちが,イエスの言われたとおりを 話すと,彼らは 許してくれた.
7.そこで,ろばの子を イエスのところへ 引いて 行って,自分たちの上着を その上に 掛けた.イエスは それに 乘られた.
8.すると,多くの人が,自分たちの上着を 道に敷き,またほかの人々は,木の葉を枝ごと野原から 切って來て,道に敷いた.
9.そして,前を行く者も,あとに 從う者も,叫んでいた.「ホサナ.祝福あれ.主の御名によって 來られる 方に.
10.祝福あれ.いま來た,われらの父 ダビデの国に.ホサナ.いと高き 所に.」
11.こうして,イエスは エルサレムに 着き,宮にはいられた.そして,すべてを見て回った 後,時間ももうおそかったので,十二弟子といっしょに ベタニヤに 出て行かれた.
Date : 2023-04-02 09:30:47    Read : 40 
 열왕기하 강해 (9) / 어리석은 자
작은예수
 충성스러운 일꾼들 / 민수기 13:25-33절
작은예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