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고이와성산교회
 
 
 
2023/10/22
룻1:1-22절 / 개혁을 위한 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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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작은예수
Subject     마태복음 8:5-13절, 제목:내가 가서 고쳐주리라.
성경:마태복음 8:5-13절,   제목:내가 가서 고쳐주리라.
설교:김 병철 목사, 일시:2023년 9월 24일(주일낮 설교)

  서  론: 오늘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은혜의 말씀에 제목은“내가 가서 고쳐주리라.”이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기를 원합니다. 이 말씀을 읽고 듣고 보는 가운데 성령하나님의 폭포수와 같은 은혜가 저와 여러분들 심령 가운데 임하시기를 존귀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신앙이 좋고 선정을 베풀었던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은 종종 궁궐을 빠져나가서 서민들과 사귀고 대화하는 것을 즐겼다고 합니다. 한번은 믿음이 좋은 한 과부의 집을 찾아갔습니다. 여왕은 과부와 함께 신앙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대화 중에 과부의 믿음에 감동받은 여왕은“부인을 찾은 손님 중에 가장 고귀한 분은 누구입니까?”하고 물었습니다. 여왕은 과부가“예수님입니다”라고 대답할 것을 기대했는데, 전혀 뜻밖의 대답이 나왔습니다.“가장 귀한 손님은 두말할 것도 없이 여왕 폐하이십니다. 제 생애 최고의 손님이십니다.”그러자 실망한 여왕은“부인을 찾아 주신 최고의 손님은 예수님이 아닐까요?”하고 물었습니다. 그 말에 과부는 빙그레 웃으면서 대답하기를 “여왕 폐하, 예수님께서는 결코 손님이 아니십니다. 저의 영원한 주인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제 집에 처음부터 계신 분이시고, 저는 그분을 위해 존재합니다.”라고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당신은 예수님을 필요할 때마다 부르는 손님입니까? 아니면 당신이 모시고 계신 주인이십니까?

  본  론: 본문은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백부장이 자신의 병든 하인을 위해 예수님께 고쳐달라고 부탁하는 내용입니다. 예수님이 가버나움에 가셨을 때 한 백부장이 예수님께 와서 도움을 구하며 '주님, 제 하인이 중풍에 걸려 몹시 고생하고 있습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백부장에게 '내가 가서 고쳐 주겠다.' 하자 백부장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주님, 저는 주님을 내 집에까지 모실만한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저 말씀 한마디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 하인이 나을 것입니다. 저도 윗사람을 모시고 있고 제 아래에도 부하들이 있어서 제가 부하에게 '가라' 하면 가고 '오라' 하면 오고 내 하인에게 '이 일을 하라.' 하면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에 놀라시며 따라온 사람들과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분명히 말하지만 이스라엘 온 땅에서 이만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만나보지 못하였다. 또 너희에게 말하노니 동서 사방에서 많은, 이방인들이 모여들어 하늘나라에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잔치 자리에 앉을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바깥 어두운 곳에 쫓겨나 통곡하며 이를 갈 것이다.' 그리고서 예수님은 백부장에게 '가라. 네 믿음대로 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바로 그 시각에 그의 하인이 나았다는 말씀이 본문 내용입니다. 이 내용을 살펴보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기를 소원합니다.

  본문 마태복음과 누가복음 7:1-10절에도 등장합니다. 누가, 마태복음을 종합해서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은 약간의 차이점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의 경우에는 백부장이 가버나움에 오신 예수님을 직접 찾아가 도움을 구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직접 백부장의 집에 찾아가서 고쳐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누가복음의 경우에는“백부장이 평소에 자신이 잘 알고 지내는 장로들 몇을 불러서 예수님께서 계신 곳으로 보내어 하인을 고쳐 달라고 부탁하는 것으로 나옵니다. 이 장로들은 예수님께 나아가 백부장의 하인이 죽게 되었습니다. 이 백부장의 하인을 고쳐주십시오. 백부장의 하인을 고쳐주시는 것이 참으로 옳다고 예수님을 설득합니다. 왜냐하면! 그 백부장은 유대인들을 위해서 일을 많이 한 사람이고, 우리 민족을 사랑하며, 우리를 위하여 회당도 지어준 사람입니다. 그러니 이런 사람을 도와주지 않는다면 누구를 도와주어야 합니까? 도와주는 것이 옳은 일임을 설명했습니다. 그랬더니 예수님께서 흔쾌히 내가 가서 고쳐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성경이 맞을까요? 이렇게 질문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성경이 틀리고, 어떤 성경이 맞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모두 다 맞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쓴 저자에 강조점이나 성격상의 문제로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는 약간에 차이점이 있다고 보는 자세가 좋다고 생각합니다.

  과연 백부장은 어떤 믿음을 소유했는가? 예수님께서 칭찬하기를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했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그 무리 안에는 제자들도 있었고, 많은 무리들도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백부장의 믿음을 칭찬했다는 것은 정말 특별한 믿음을 소유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깜짝 놀랄 만큼 믿음이 굉장히 좋았습니다. 그렇다면 백부장의 믿음이 언제부터 이렇게 좋았을까요? 정확하게는 알수가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요한복음4:45절에“갈릴리에 이르시매 갈릴리인들이 그를 영접하니 이는 자기들도 명절에 갔다가 예수께서 명절 중 예루살렘에서 하신 모든 일을 보았음이더라.”고 했습니다. 이처럼‘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행하신 모든 사역을 보았음이더라.’고 했던 것처럼 아마도 백부장도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일들을 보았든지, 아니면 예수님의 행하셨던 일에 대하여 들었든지 분명 둘 중에 하나이거나, 보고, 들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로마서10:16-17절“그러나 그들이 다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였도다 이사야가 이르되 주여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나이까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의 한번 생각해 봅시다. 그 당시에 예수님의 말씀과 기적을 본 사람이 한, 두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듣고, 보았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본 백부장의 경우는 예수님께서 칭찬할 정도의 신앙으로 성장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직도 어린 아기와 같이 젖을 먹어야 하고, 아직도 자라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신앙생활을 모태신앙생활이라고 자랑사마 말하는 이들도 있고, 20-30년 신앙생활을 했다고 하는데 아직도 미숙아 신앙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몇 년 동안 신앙생활을 하셨는지요. 만약에 우리 예수님께서 우리들의 신앙을 평가하신 다면 우리의 평점은 몇 점 정도라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들의 신앙은 성장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아직도 어린 아기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제자훈련을 철저하게 받고 우리들의 삶의 실천(예배, 기도, 봉사, 전도, 교제)을 해야 만이 진정으로 영적 성장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동경성산교회는 큰 두 가지의 축(날개)이 있습니다. 첫째 축은 예배의 축입니다. 둘째는 소그룹입니다. 받은 은혜를 함께 소그룹이 모여 나누고 더 나아가 우리들만 나눌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이들을 그 소그룹으로 전도하여 교제함으로 교회 안으로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다시, 복음을 들고 세상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철저하게 훈련을 받지 않으면, 믿음이 견고해지지 않습니다. 늘 유아기에 머물러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훈련을 잘 받아야 하는 이유는 우리의 믿음이 견고해지기 위해서라도 훈련을 잘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정말 백부장의 믿음은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예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대단히 컸다는 말입니다.

  마태복음 17장에서 보면 그들이 군중들에게 돌아오자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와서 무릎을 꿇고 말하여 주님, 제 아들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그가 간질병에 걸려서, 몹시 괴로워하며, 자주 불에 넘어지기도 하고, 물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제자들에게 데려왔으나 고치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믿음이 없고 비뚤어진 세대여, 내가 언제까지 너희와 함께 있어야 하겠느냐? 너희를 보고 내가 언제까지 참아야 하겠느냐? 아이를 이리 데려오너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리고나서, 예수님이 귀신을 꾸짖자 귀신이 아이에게서 나가고 바로 그 순간에 아이가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때 제자들이 예수님께 조용히 와서 물었습니다. '왜! 우리는 귀신을 쫓아낼 수 없었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백부장은 예수님을 신뢰함이 엄청나게 컸던 인물입니다. 자신이 군인이라는 직업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상사와 또한 자기 부하들에게 명령하면 그대로 이루어지듯이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명령만 하시면 어떤 장소에 계시든지, 먼 곳이든, 가까운데 계시든지 상관없이 놀라운 효과가 나타날 것을 확신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백부장의 믿음이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시공간을 초월하시는 분이십니다.

  왜! 예수님께서 내가 가서 고쳐주리라고 하셨을까? 사실 예수님께서는 대체적으로 누군가가 부탁을 하면 상당히 냉소적이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다는 아닙니다. 성경에 나병환자가 목숨을 걸고 주께 나와 엎드려 고백하기를‘주여 원하시면 나를 깨끗게 하실 수 있나이다.’라고 했을 때, 즉시 예수님께서‘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삼가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고 제사장에게 가서 네 몸을 보이고 예물을 드려 그 증거를 삼으라고 했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상당 부분은 주님께서는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셨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예를 든다면

  -수로보니게 여인에게는‘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예수께 나와 절하며 주여 저를 도우소서 외쳤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개들에게 주는 것도 아니고 던짐이 마땅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정말 수로보니게 여인을 개 취급을 했습니다.

  -어머니 마리아가 가나 혼인잔치에 참석하여 포도주가 떨어졌을 때에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찾아가서 포도주가 떨어졌다고 하자. 예수님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고 했던 분입니다.

  -제자들이 배를 타고 갈릴리를 건너갈 때, 바람이 불고 풍랑이 일어 배 속으로 물이 들어오니 죽게 되었습니다. 그때, 제자들은 호들갑을 떨었습니다. 어쩌면 제자들의 행동은 당연한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면서 주무시는 예수님을 깨웠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달래며 내가 여기 있지 않니 너무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셔야 정상이 아닙니까?“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 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였더라”고 했습니다.

  -마르다, 마리아가 자신의 오라버니가 병이 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사람을 보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그곳에서 이틀이나 더 유한 후에야 베다니에 가셨다고 했습니다. 가서 보았더니 나사로가 죽었습니다. 이처럼 마르다, 마리아의 부탁을 완전히 무시하셨던 분께서 오늘은 내가 가서 고쳐주리라고 하셨습니다. 그것도 유대인도 아니고, 이방인이었습니다. 일반 사람도 아닌, 군인을 위해서 그렇게 자상하게 하실수가 없었습니다. 사실 당시 군인들은 백성들에게 폭정으로 다스렸던 사람들이 아니었습니까? 그리고 백부장 자신을 고치는 것도 아니고, 그 백부장의 하인을 고쳐주는 일에 주님께서 이렇게 발 벗고 나서며 직접 내가 그리로 가서 고쳐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유대인도 아니고, 로마 사람인 이방인을 위해, 그것도 백부장의 하인을 고쳐주시기 위해, 그 먼 거리를 가셨고, 시간 드려 그 집까지 가셔서 고쳐 주시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재미난 사실은 예수님께서 움직이시는 곳에는 제자들과 많은, 군중들이 따라다녔다는 것입니다. 그 모든 사람들이 백부장 하인을 고치는데 따라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직접 백부장의 하인의 병을 고쳐주실 때에는 분명히 의도하신 바가 있었을 것입니다. 내가 직접 가셔서 고쳐주신다고 했던 이유는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1)백부장이 예수님을 얼마나 신뢰하고 있는가? 그 믿음을 제자들과 따라오는 무리들에게 가르쳐주시기 위함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들은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실질적으로 믿음을 보여야 할 시기에는 마치 불신자나 별 다를 바 없이 행동한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믿음은 가정이나, 직장이나, 신앙생활 속에서 전혀 바뀌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믿음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시절을 쫓아 옷을 갈아 입듯이 변화면 안 되는 것입니다. 환경에 따라 바뀌는 신앙이 과연 진정한 믿음이라 말할 수 있을까요?

  2)이방인들도 아브라함의 자녀가 될 수 있고, 스스로 선택받았다고 자부했던 유대인들도 밖에서 이를 갈며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시기 위함입니다. 본문11-12절“11.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 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12.그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고 했습니다. 나는 교회 다니니까? 천국 들어가는 티켓을 따 놓았다고 자랑하지 마십시오. 예수님을 제대로 믿어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확실하게 믿고, 성령으로 충만한 삶을 살아가는 자녀는 구원의 확신이 있는 자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냥 교회 왔다 갔다 한 것을 의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로 여긴바 되는 줄 믿습니다.

  3)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따라오는 무리들에게 분명히 말씀하시고자 했던 것이 예수님의 권위,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그들에게 알려주기 원하셨습니다.  백부장이 예수님을 어떻게 신뢰하고 있는지 그 믿음을 보여주시고, 싶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그를 놀랍게 여겨 돌이키사 따르는 무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하시더라.”고 했던 것입니다. 백부장의 믿음은 이론이 아니라 삶의 체험에서 얻은 믿음이었습니다. 백부장은 지금으로 말하면 직업군인이었습니다. 아마도 백부장은 군인들을 통솔하면서 예수님의 대한 이야기를 부하들에게 들었을 것이고, 또한 자기 자신도 직접 그 예수님의 사역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때 마침 자신의 하인이 병이 들었던 것입니다. 그의 믿음은 이론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행동하는 믿음이 있었고, 군인이기 때문에 상하 복종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영적인 부분에 있어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이시라면 당연히 말씀 한마디로 고칠 수 있다고 백부장은 믿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말씀만으로도 고칠 수 있다면 거리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멀리있던, 가까이 있던, 직접 안수를 하시던 안수를 하지 않으시던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나병을 손으로 어루만져 고치던,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씻던,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그 권위 앞에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 어떤 환경이라도 그 앞에서 복종하게 되는 줄 믿습니다. 예수님은 이 같은 사역을 통해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거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가나안 혼인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들었을 때, 비로소 제자들이 예수님을 믿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이란 입술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은 이론이 아니라 실제입니다. 믿음은 이론이 아니라 행함에 있는 것입니다. 진정한 믿음이란 예수님을 어느 정도 신뢰하고, 믿고 따라가는가가 진정한 믿음의 척도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백부장의 믿음은 가정과 직장 그리고 신앙생활 그 자체가 동일했다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신앙, 교회에서의 신앙, 직장에서의 신앙,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신앙,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신앙이 별개의 것으로 따로,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동일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입니다. 믿습니까? 이원화된 신앙은 점차적으로 자신의 신앙에 대하여 회의를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이란? 과연 뭐야! 내가 지금껏 믿고 따랐는데 나에게 남는 것이라고는 고작 고난, 고통, 상식, 이것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신앙이라는 것인가? 그렇다면 기독교가 다른 종교와 무엇이 다르다는 말인가? 하면서 회의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일치된 신앙이 중요합니다. 신앙은 이론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우리들의 삶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기적과 능력이 상식이 되어야 하는 줄 믿습니다.

  결  론: 말씀을 맺기를 소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백부장의 사건을 통해서 여러가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백부장의 믿음과 예수님께서 직접 백부장의 하인을 고친 사건 더 나아가 백부장과 하인의 축복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말미암아 축복이 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줄 믿습니다. 이 시간 신앙은 이론이 아니라 실제라는 사실을 믿고 주님께 더욱 더 가까이 따르고 신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나의 영원한 주인이시라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개혁성경 / 마8:5-13절
5.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한 백부장이 나아와 간구하여
6.이르되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
7.이르시되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8.백부장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9.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10.예수께서 들으시고 놀랍게 여겨 따르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11.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 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12.그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13.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즉시 하인이 나으니라

5.イエスが カペナウムに はいられると ひとり百人隊長がみもとに 來て 懇願して
6.言った.「主よ.私のしもべが 中風やみで 家に 寢ていて ひどく 苦しんでおります.」
7.イエスは 彼に 言われた.「行って 直してあげよう.」
8.しかし 百人隊長は 答えて 言った.「主よ.あなたを 私の屋根の下に お入れする 資格は 私にはありません.ただ おことばをいただかせてください.そうすれば 私のしもべは 直りますから.
9.と申しますのは 私も 權威の 下にある 者ですが 私自身の下にも 兵士たちがいまして そのひとりに『行け.』と 言えば 行きますし 別の者に『來い.』と 言えば 來ます.また しもべに『これをせよ.』と 言えば そのとおりにいたします.」
10.イエスは これを 聞いて 驚かれ ついて 來た 人たちにこう 言われた.「まことに あなたがたに 告げます.わたしは イスラエルのうちのだれにも このような 信仰を 見たことがありません.
11.あなたがたに 言いますが たくさんの人が 東からも 西からも 來て 天の御国で アブラハム イサク ヤコブといっしょに 食卓に 着きます.
12.しかし 御国の子らは 外の暗やみに 放り 出され そこで 泣いて 齒ぎしりするのです.」13.それから イエスは 百人隊長に 言われた.「さあ 行きなさい.あなたの信じたとおりになるように.」すると ちょうどその時 そのしもべはいやされた.
Date : 2023-10-22 13:29:51    Read : 12 
 막6:30-44절, 제목: 풍성한 삶을 사는 성도들
작은예수
 열왕기하 강해 (22) / 끊임없는 개혁운동(2)
작은예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