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고이와성산교회
 
 
 
2023/10/22
룻1:1-22절 / 개혁을 위한 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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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예수
Subject     막6:30-44절, 제목: 풍성한 삶을 사는 성도들
성경: 막6:30-44절,  제목: 풍성한 삶을 사는 성도들
말씀: 김 병철목사, 2023년 10월 01일(주일 낮 설교)

  서  론: 오늘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은혜의 말씀에 제목은“풍성한 삶을 사는 성도들”입니다. 이 말씀을 읽고, 듣고, 보는 가운데 성령님의 폭포수와 같은 은혜가 넘쳐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가 어느 나라일까요? 단순한 국민 소득만 비교하는 것이 아닌, 여러 사회, 경제적 조건을 종합하여 평가하면 단연 미국이라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세계에서 끼니를 굶는 가난한 이들이 가장 많이 사는 나라가 어디일까요? 놀랍게도 역시 미국입니다. 수년 전 보고서를 보니까 미국의 약 410만 가구 1,100만 명이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먹지 못하고 굶는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북한 인구 중 약 1,000만 명이 기아에 시달리고 있다고 하니 어떻게 보면 미국의 기아 인구는 북한보다 더 많은 셈입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사실을 그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내 결식자 가운데 약 200만 명은 하루 한 끼도 먹지 못하는 날이 종종 있다는 사실입니다. 무려 200만 명에 이르는 국민들이 절대적 영양실조 상태에 있다는 것입니다. 말 하지면 미국 인구 중 약1%가 이 풍요의 나라에서 하루 한 기도 못 먹고 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더욱이 이 숫자는 홈 리스라고 불리는 약 60만 명의 노숙자를 제외한 통계라고 합니다. 그런데 1,100만 명의 국민이 배를 곯고 있는 미국 땅에서는 한 해에 무려 4,360만 톤 즉, 8톤 트럭으로 545만대 분량의 음식물 쓰레기가 버려진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딱 맞아떨어지게 묘사하는 말이 있다면 그것은‘풍요 속의 빈곤’이라는 문장일 것입니다. 진정으로 풍요란 과연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국어사전에서는 풍요를‘흠뻑 많아서 넉넉함이 있다’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물론 풍요롭다는 말은 물질적으로 넉넉함을 의미할 것입니다. 모든 면에서 넉넉함이 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풍요함이란 타인을 행복하게 하고, 타인을 풍성케 하는 가치는 있는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을 풍요로운 인생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본  론: 본문을 간략하게 소개하겠습니다. 본문을 흔히 오병이어 사건이라고 말합니다.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셨다고 해서 이렇게 붙어진 것입니다. 본문은 마가복음 이외에도 마태, 누가, 요한복음에 이르기까지 모두 기록되어 있는 유명한 사건입니다. 성경에서 여러 번 반복해서 나온다는 것은 중요한 사건이라는 뜻이 되기도 합니다. 어째든 본문 내용을 설명하면서 사 복음서를 전체적으로 종합해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예수님께서 둘씩, 둘씩 짝을 지어서 제자들에게 권능을 주시고, 전도하라 하셔서 제자들은 각 지역으로 전도하고 돌아온 제자들이 자기들이 행하고 가르친 모든 일을 예수님께 보고 하였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얼마나 피곤하겠는가? 생각하시고 그들에게 '한적한 곳으로 가서 잠시, 쉬도록 하자.' 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오고 가는 사람이 너무 많아 식사할 겨를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예수님의 일행은 배를 타고 조용한 곳으로 떠났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떠나는 것을 본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일행인 줄 알고 여러 마을에서 나와 육로로 달려가 그곳에 먼저 도착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배에서 내려 많은, 군중들을 보시고 목자 없는 양과 같아서 그들을 불쌍히 여겨 많은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날이 저물어 가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말하였습니다. '이곳은 벌판인 데다가 날도 이미 저물었습니다. 사람들을 가까운 마을로 보내 각자 음식을 사 먹게 하십시오.' '너희가 저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우리가 가서 200데나리온이나 들여 빵을 사다가 먹이란 말씀입니까?' '너희가 가진 빵이 몇 개나 되는지 가서 알아보고 오너라.' 그래서 제자들이 알아보니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이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모든 사람을 떼지어 풀밭에 앉히라고 지시하자 그들은 100명씩, 50명씩 모여 앉았다. 예수님은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받아 들고 하늘을 우러러 감사 기도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시며 사람들 앞에 갖다 놓게 하였다. 그리고 물고기 두 마리도 모든,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모두 실컷 먹고 남은 빵과 물고기 조각을 열두 바구니나 거뒀으며 먹은 사람은 남자만 약 5,000명이었다.”고 했습니다. 이 내용을 생각해 보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기를 소원합니다.

  첫째, 풍성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현 상황을 통찰할 수 있는 눈(시야, 시각)이 있어야 합니다. (33-36절) 먼저 예수님의 삶은 이타적인 삶이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언제나 예수님은 자신의 백성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으셨던 분이시지요. 본문에서는 예수님은 어떠셨습니까? 본문 34절“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아주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무엇을 보셨다고 했습니까? 그렇습니다. 예수님께 나오는‘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6:5절을 보시면 좀 더 다르게 소개합니다.‘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하시니’고 했습니다. 다른 성경에서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해가 저물어 가고, 이곳은 빈들입니다. 이들에게 다른 마을로 내려가서 무엇인가를 사 먹게 해야 하지 않을까요? 라고 질문하지만, 요한복음에서는 이미 예수님께서 저들의 필요를 아시고 빌립에게 질문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저들의 형편과 사정을 이미 아셨고, 저들의 필요를 헤아려 보셨던 분이십니다. 또한, 영적으로 저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음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다고 했습니다.

  풍성한 삶을 사는 이들은 타인의 행복, 타인의 삶에 풍성함과 가치 있는 일을 주고자 하는 이들은 그들의 형편과 사정을 볼 수 있는 눈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지 못하면 그들에게 행복과 삶의 풍성을 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눈은 그들을 영적으로 볼 때, 목자 없는 양처럼 보이셨습니다. 너무나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들은 말씀을 너무 사모하는데 환경은 저물어 가고, 그들이 있는 곳은 빈들이었으며 먹을 것을 구할 수 없는 곳이라는 것 또한 잘 아셨습니다. 그래서 먼저 빌립에게 불었습니다.“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고 고민하셨습니다. 타인에게 행복과 풍성한 삶을 줄 수 있는 이들은 타인의 아픔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타인의 고통을 보는 시야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수많은, 사람들의 몫을 혼자 깔고 앉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어떤 이는 혼자의 몫이 아닌 수많은, 사람들의 몫으로 서로 나누면 살아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항상 그 방법을 모색하는 자들입니다. 가치 있는 삶을 살도록 도와주는 일이 과연 무엇일까? 고민하고, 연구하며 결국 그 방법을 찾아서 그들로 하여금 참 행복과 풍요로운 삶이 과연 무엇인가를 저들에게 알려주므로 그들 또한 또 다른 이들에게 이와 같은 풍요로운 삶을 살도록 돕는 것입니다. 아주 건강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수많은, 부모님들이 아이들에게 공부하라고 잔소리를 합니다.‘야! 공부해서 남, 주냐! 다 너를 위해서 하라는 거야!’우리는 이렇게 배웠고, 또한 이렇게 가르쳐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이 자신이 공부하는 이유와 목적이 자신이 잘 먹고, 부자로 살기 위한 목적으로 변해 버렸습니다. 잘못된 교육철학을 아이들에게 우리들은 강요하면서 마음에 심어 주었던 것입니다.“야! 공부해서 남, 주냐! 다 너를 위해서 하는 거야! 가 아니라 공부 잘해서 남 주기 위해 공부하는 거야!: 이렇게 가르쳐 주어야하는 것입니다. 돈 많이 벌어서 세금 내고, 가난한 이들 돕기 위해, 복음 전하기 위해 돈을 버는 겁니다. 아멘입니까? 할렐루야! 이렇게 풍성한 삶을 살아가시는 성산의 가족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둘째, 삶을 풍성케 하는 자들은 행동으로 말을 합니다. (요6:6-9절) 예수님께서는 빌립에게 묻습니다. 이 많은, 사람들을 위해 떡을 어디에서 구해서 저들에게 줄고 빌립을 시험하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우리가 중요한 두 사람을 발견하게 됩니다. 빌립과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나옵니다. 이 두 사람의 행동을 유심히 살펴보면서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빌립을 생각해 봅시다. 본문 요한복음 6:5-7절을 함께 읽겠습니다.“5.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하시니 6.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 7.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 하리이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고 물으신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빌립의 대답은 예수님 이 많은 사람들에게 조금씩 떡을 준다고 해도 무려 이백데나리온를 가지고도 부족할 것입니다. 있다손 치더라도 지금 그 만큼의 떡을 어디서 구할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러니 빨리 이 사람들에게 각자 마을로 내려가서 저들의 허기진 배를 채우도록 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빌립의 말이 틀리지 않았고, 또한, 맞는 말입니다.  이 말은 빌립이 말했지만 대부분의 제자들도 이와 같은 생각을 했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현실주의자이고, 합리적인 사람의 대표적인 생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좀 더 깊은 속 내를 보면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있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부정적인 사람들의 특징은 계산, 수학적입니다. 계획도 잘 세우는 편입니다. 본문에서 그러나 이백 데나리온으로도 부족합니다. 그러니 각자 마을로 내려가서 손 쉽게 해결하도록 하십시오. 라고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안드레를 생각해 봅시다. 사실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의 출처가 어디에서 나왔는지 다른 성경에서는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요한복음에서만 언급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6:8-9절을 함께 읽겠습니다.“8.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9.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고 했습니다. 안드레는 빌립에 계산하고 있는 사이에 혹시 먹을 것이 있는지를 찾아보았던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지 않았지만 아마도 이렇게 하지 않았을까? 추측해 보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가운데 먹을 것 가지고 계신 분이 계신가요? 그 와중에 어린아이가 자신이 가지고 있었다고 손을 들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어린아이도 점심을 먹으려고 했던 시기를 놓치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다가 어쩌면 점심을 먹지 못했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소년이 이렇게 자신의 도시락을,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안드레에게 내놓았습니다.

  안드레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행동으로 옮겨 먹을 것을 찾아다녔고, 결국 어린아이의 도시락을 들고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그리고는 안드레 그는‘예수님 여기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이 이 많은 사람들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라고 민망한 목소리로 말을 했을 것입니다. 제자들도 아니! 사람이 몇 명인데...인산인해를 이룬 이들에게 먹을 것이 필요하다지만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누구 코에 붙인다는 말인가? 제자들 사이에서도 수군수군 거렸을 확률이 높습니다. 안드레의 손이 부끄러울 지경이었을 것입니다. 어느 책 제목을 보니깐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바보들은 언제나 계획만을 한다.’고 말입니다. 바보들은 방학이 되면 생활계획표를 정말 촘촘하게 계획표만을 작성합니다. 한 시간 단위로 계획표를 작성하고는 하루 이틀이 열심히 지키려고 애를 쓰다가 결국 작심삼일이 되어서야 계획표는 무의미한 종이쪽으로 바뀌게 됩니다. 바보같은 사람은 계산만 합니다. 계획만 세웁니다. 합리적인 것만을 따집니다. 그러다가 결국 안 된다는 결론을 내리는 사람들이지요. 무엇인가? 믿음으로 행동하거나, 노력하는 사람, 실천하는 사람만이 타인에게 행복과 풍성한 삶을 누리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1984년 서해안 간척지 개발사업을 합니다. 정 주영 회장은 80년대 초 바다를 메워 옥토를 만드는 대규모 간척사업에 착수합니다. 서해안의 지도를 바꾸는 대역사였습니다. 엄청난 규모의 바닷물을 막아 농토로 전환하는 작업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는데, 특히 최종 물막이 공사가 가장 난제였습니다. 당시의 내노라고 하는 공학박사들이 모여서 고민해보면서 재정만 낭비하고 난 후에 이 사업은, 안 되는 사업이라 결론 내렸습니다. 결국, 회장인 정주영 회장 앞에서‘이 사업은 원래부터 안 되는 사업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시간, 돈, 인력을 낭비한 것입니다.’왜냐하면 집채만 한 바위들이 그냥 쓸려 내려가는 것입니다. 당시 내로라하는 공학박사들도 도저히 어떻게 해볼 방법이 없어서 손을 든 것입니다.

  그때 정주영 회장은 노력해 보지 않고, 무조건 포기하는 것은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정 주영은 노후화된 대형 유조선을 이용해 엄청난 압력의 물의 흐름을 막아 둑을 완성하는 '유조선공법(일명 정주영공법)'이라는 기상천외한 발상으로 여의도의 48배에 해당되는 서해안을 간척했습니다. 낡은 유조선을 구매한 뒤에 간척지를 메꾸고, 사용한 뒤에 분해해서 고철은 팔았다고 합니다. 결국 그는 한국의 지도를 바꾸워놓은 장본인이 되었습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안 된다.'라는 결론을 내리기보다는 '해보고 안 된다'라고 하는 자세를 말하고 싶습니다. 미래가 예측이 되고, 객관적으로 힘들고 안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하더라도 시도조차 안 해보는 것보다는 해본 뒤에 후회해도 늦지 않다는 것입니다. (찬양: 할 수 있다 하면된다 해보자.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함이 없으리로다.)

  셋째, 나의 작은 것이 하나님의 손에 들려질 때, 풍성한 역사가 나타나게 된다. (9-11절) 내 손에서 없어지면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요사이 투자하는 것은 지금 당장 나의 손에는 없어지는 것 같은데 후에 엄청난 것으로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손에 투자를 했더니 그 하나님께서 놀라운 역사를 일으켰다는 것입니다. 어린아이의 도시락이 값어치가 어느 정도 나가겠습니까? 지금으로 말하면 700-800엔 주면 살 수 있는 아주 작은 도시락을 일 것입니다. 본문에 도시락이라는 말은 없습니다. 어린아이가 먹을 양입니다. 값어치도, 양도 그리 많지 않은 것을 주님께 드렸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주님께 드리는 것이 양과 질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작지만 전부, 작지만 그의 믿음을 드렸을 때, 하나님께서는 놀랍게 역사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어린아이가 혼자 먹었으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지만 주님께 드렸더니 오천 명 아니 그 이상, 수많은, 사람들이 풍성함을 누렸다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11-12절 상반 절에 보면 “11.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12.그들이 배부른 후에”라고 적혀 있습니다. 어린아이가 드렸던 도시락 하나가 5천 명이나 먹였다. 성경에는“그들의 원대로 주니라. 그들이 배부른 후에”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의 작은 것이 하나님의 손에 붙들리면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게 되는 줄 믿습니다.

  생각해 봅시다. 예수님의 열두제자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습니까? 대체적으로 어부출신들이 많았고, 그중에는 세리 출신도 있었습니다. 어쩌면 그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어부로써 성장했을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갈릴리 바다는 눈에 익은 풍경입니다. 바다와 물고기들은 그들의 벗이었고, 놀이터였으며 특별히 그들에게 큰 꿈이라고는 없었습니다. 자라서 아버지처럼 바다에서 고기를 낚는 어부, 그것은 꿈이 아니라 어쩌면 그들에게는 운명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예수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는 그들에게 엄청난, 충격적인 말씀을 하십니다.‘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너는 나를 따르라는 말씀은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그들의 꿈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그들이 좋아하는 취미를 포기해야 했던 것입니다. 성경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마태복음 4:18-22절“18.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19.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20.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21.거기서 더 가시다가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이 그의 아버지 세베대와 함께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부르시니 22.그들이 곧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고 했습니다. 이때부터 그들은 예수님의 손에 붙들렸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손에 붙들리므로 말미암아 역사에 길이 남는 위대한 하나님의 종들이 되었고, 시대를 바꾸는 위대한 하나님의 일꾼으로 역사에 기록되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펜이 누구의 손에 있느냐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는 것입니다. 위대한 문학가인 톨스토이에게 펜이 붙잡히면 위대한 작품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범죄자의 손에 잡히면 보잘것 없는 펜이라 할지라도 범죄의 도구로 쓰이게 되는 것입니다. 칼은 요리사에 손에 잡히면 훌륭한 요리가 나오지만, 범죄자의 손에 들리면 강도질하고, 도둑질하며, 사람들에게 상처를 줄 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들은 지금 현재 무엇을 가지고 있습니까? 그것이 하나님의 손에 들려지기를 소원합니다. 저와 여러분들의 시간, 물질, 건강, 기업, 자녀, 가정, 은사, 인생이 아무리 보잘 것 없어 보여도 주님께 온전히 드려질 수만 있다면 예수님께서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위대한 일, 놀라운 기적의 역사가 일어나게 될 줄 믿습니다. 아멘.

  넷째, 풍성한 삶,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는 자들은 검소하게 살아갑니다. (12-13절) 진정으로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는 자는 허풍떨지 않습니다. 건방지지 않습니다. 언제나 자신의 본문을 잊지 않고, 또한 자기 자신의 과거를 잊지 않으며 늘 검소한 삶을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능력의 원천이신 예수님께서는 보리 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 모아둔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가득 찼다고 했습니다. 요한복음6:12-13절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12.그들이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13.이에 거두니 보리 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생각해 봅시다.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이 하려고 하시면 못 할 것이 없으신 전능하신 분이시고, 온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만물의 주인이 바로 우리 주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그들이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고 했습니다. 이 내용을 보면 재미나지 않습니까? 다른 분도 아니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도록 친히 말씀하셨다는 것은 하나님, 답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마음만 먹으면 그보다 더 큰 일을 하실 수 있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신데 구지 남은 조각들을 거두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은 조금 의외입니다. 여기에서 예수님의 성품, 그의 검소함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타인을 행복하게 하고, 타인에게 영향력을 행하시는 예수님은 자신 스스로가 검소했다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검소하셨는데 우리들이야 말할 것도 없이 검소해야 하지 않을까요? 타인을 행복하게 하고, 타인에게 영향력을 미치며, 또한 가치 있는 일을 위해서라면 자기 자신에게는 한없이 엄격한 잣대를 되고, 스스로 겸손하며, 또한, 검소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대인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남을 돕는 일에는 앞장서고, 가치 있는 일에는 멋있게 물질도, 시간도, 건강도, 재능도 기부할 수 있는 큰마음을 갖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물질과 재능, 기술, 사업의 능력이 있다면 인생을 허랑방탕하며 낭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값지게 쓰임 받기를 축원합니다. 요사이 특히 돈과 관련된 온갖 비리와 부패가 넘쳐나고 있습니다. 권력에 힘을 빌려 자신의 재산을 축적시키고,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는 이들과 돈이면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는 사고를 갖고 사는 사람들이 판을 치는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돈만 있으면 대학도 들어가고, 자격도 되지 않는 사람이 국가대표 마크를 달고, 돈만 있으면 권력도 주무르려고 하는 세상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진정으로 부유한 사람은 자신의 신분을 알고, 낮아지고, 더 검소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름다운 덕 있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가진 자들이 거드름을 피우거나, 돈 자랑하며, 시건방지게 행동하는 모습을 바라보면 정말 비위가 상하게 됩니다.

  예화) 박태준 포항제철 회장 그는 1927년 경남 동래군에서 태어난 그는 아버지를 따라 6세에 일본으로 건너가 초중고교를 다녔고 와세다대 공대 2학년 재학 중 해방을 맞아 중퇴·귀국했습니다. 육군사관학교 6기로 임관한 그는 6.25 전쟁 당시 경기 포천지역 1연대 중대장을 지냈고, 군에서 충무무공훈장·화랑무공훈장을 받았고 육군대학 수석 졸업 후 최연소 육사 교무처장, 1군 참모장 등을 지냈습니다. 34세이던 1961년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비서실장을 맡은 그는 이후 50년 동안 요직(要職)을 맡았습니다. 육군 소장 예편→대한중석 사장(3년)→포항종합제철 사장·회장(25년)·명예회장→민정당 대표·민자당 최고위원·자민련 총재·4선(選) 국회의원→국무총리까지 지냈습니다. 누가 봐도 한국 현대사에서‘권력과 부(富)의 중심에서 누릴 수 있는 걸 다 누린 인생’의 전형입니다.
‘민족문학작가회의’고문을 지낸 좌파 진영 소설가인 조정래씨는“박태준은 한국의 간디이다. 나는 그의 이름에 마하트마를 붙여‘마하트마 박’으로 부르고 싶다.”고까지 했습니다, 그는‘솔선수범’하는 경영자인 동시에‘무사욕(無私慾)’의 리더였습니다. 피와 땀을 쏟아 창업하고 성장시킨 포스코에서 25년 만에 물러날 때, 그는 한 주의 공로주(功勞株)는커녕 퇴직금 1원도 거부했습니다. 1988년 포항제철 임직원 1만9419명에게 전체 발행 주식의 10%를 우리 사주(社株)로 배정했을 때도 같았습니다.

  명예회장으로 복귀한 뒤 “노후를 생각해 조금이라도 스톡옵션을 받으시라.”는 주변의 권유에도 그는“포항제철은 선조(先祖)의 피로 세운 회사입니다. 공적인 일을 할 때, 사욕(私慾)을 갖지 말라!”고 말을 했습니다. 주식·퇴직금 ‘0원’그리고 73세까지 전세를 살았다고 합니다. 심지어 그가 포항제철 사장 시절 아버지가“문중 사람들을 좀 써주면 안 되겠냐?”는 질문에 그는 그대로 방을 나와 회사로 돌아갔다는 일화도 있습니다. 또한, 1962년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준 하사금을 합쳐 서울북아현동에 집을 마련하기까지 그는 8년 동안 15번 전셋집을 전전했다고 합니다. 무려 38년간 살던 집을 2000년에 팔아 생긴 돈 14억 5000 만원 중 10억원을 아름다운 재단에 기부하고 73세에 다시 전세살이를 했다고 합니다. 정말 청렴한 훌륭한 지도자였습니다. 소설가 조정래씨는 박태준의 죽음 앞에 그의 추도문에서 이렇게 적었습니다.“너나없이 돈에 홀려 정신 잃은 세상에서 박태준의 길을 따라가기란 너무 어렵고, 어쩌면 그분은 이 시대에 마지막 애국자인지 모른다. (중략) 정직·청렴한 그분을 바로 아는 것은 우리들의 삶을 바르게 세우는 길이다.”라고 했습니다. 크리스천들의 삶은 청렴하고, 정직하며 더 나아가 또 다른 사람들의 삶까지 풍성하게 하는 삶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결  론: 말씀을 맺기를 소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무릇 훌륭한 사람의 손에 붙들려도 귀하게 사용되고, 쓰임을 받는데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에 붙들리면 당연히 위대하게 쓰임 받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쓰임받고 싶지 않으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들을 사용하고 싶어 하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께서는 인격적이시신 분이시기에 강제적으로 하시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드려진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떤 존재이냐! 얼마나 능력이 있느냐를 보시지 않으시고, 얼마나 순종하느냐를 보시고 사용하시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문제는 저와 여러분들의 결단이 필요합니다. 하나님 나를 사용하시되 마음껏, 원 없이 사용하여 주옵소서. 주께서 쓰시기에 편리한 종이 되겠습니다. 사용하여 주옵소서. 풍성한 삶을 살 뿐만아니라, 타인에게도 풍성한 삶을 나누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존귀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아멘








막6:30-44절
30.사도들이 예수께 모여 자기들이 행한 것과 가르친 것을 낱낱이 고하니 31.이르시되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어라 하시니 이는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아 음식 먹을 겨를도 없음이라 32.이에 배를 타고 따로 한적한 곳에 갈새 33.그들이 가는 것을 보고 많은 사람이 그들인 줄 안지라 모든 고을로부터 도보로 그 곳에 달려와 그들보다 먼저 갔더라 34.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 35.때가 저물어가매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여짜오되 이 곳은 빈 들이요 날도 저물어가니 36.무리를 보내어 두루 촌과 마을로 가서 무엇을 사 먹게 하옵소서 37.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 여짜오되 우리가 가서 이백 데나리온의 떡을 사다 먹이리이까 38.이르시되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는지 가서 보라 하시니 알아보고 이르되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더이다 하거늘 39.제자들에게 명하사 그 모든 사람으로 떼를 지어 푸른 잔디 위에 앉게 하시니 40.떼로 백 명씩 또는 오십 명씩 앉은지라 41.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시고 또 물고기 두 마리도 모든 사람에게 나누시매 42.다 배불리 먹고 43.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44.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
30.さて,使徒たちは,イエスのもとに 集まって來て,自分たちのしたこと,教えたことを 殘らず イエスに 報告した.
31.そこで イエスは 彼らに 「さあ あなたがただけで 寂しい 所へ行って しばらく 休みなさい.」と 言われた.人々の出入りが 多くて ゆっくり 食事する時間さえなかったからである.
32.そこで 彼らは,舟に乘って,自分たちだけで 寂しい 所へ行った.
33.ところが,多くの人々が,彼らの出て 行くのを見,それと 氣づいて,方々の 町々からそこへ 徒步で 驅けつけ,彼らよりも 先に着いてしまった.
34.イエスは,舟から 上がられると,多くの群衆をご 覽になった.そして 彼らが 羊飼いのいない 羊のようであるのを 深くあわれみ, いろいろと 敎え 始められた.
35.そのうち,もう 時刻もおそくなったので,弟子たちは イエスのところに 來て言った.「ここはへんぴな所で,もう 時刻もおそくなりました.
36.みんなを 解散させてください.そして,近くの部落や 村に行って 何か食べる 物をめいめいで 買うようにさせてください.」
37.すると,彼らに 答えて 言われた。「あなたがたで,あの人たちに 何か食べる 物を上げなさい. 」そこで 弟子たちは 言った.「私たちが 出かけて 行って, 二百デナリ もの パンを 買ってあの 人たちに 食べさせるように,ということでしょうか.」
38.すると イエスは 彼らに 言われた.「パンはどれぐらいありますか.行って見て 來なさい.」彼らは 確かめて 言った.「五つです.それと 魚が二匹です. 」
39.イエスは,みなを,それぞれ 組にして 靑草の上にすわらせるよう,弟子たちにお 命じになった.
40.そこで 人々は,百人,五十人と 固まって 席に 着いた.
41.すると イエス は, 五つのパンと 二匹の魚を 取り,天を 見上げて 祝福を 求め,パンを 裂き,人々に 配るように 弟子たちに 與えられた.また,二匹の魚もみなに 分けられた.
42.人々はみな,食べて 滿腹した.
43.そして,パン切れを 十二のかごにいっぱい 取り集め,魚の殘りも 取り 集めた.
44.パンを 食べたのは,男が 五千人であった.
요6:1-14절
1.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의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가시매 2.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자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보았음이러라.3. 예수께서 산에 오르사 제자들과 함께 거기 앉으시니 4. 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5.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하시니 6.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 7.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8.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9.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시니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가 오천 명쯤 되더라. 11.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12. 그들이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13.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 14. 그 사람들이 예수께서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15.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가시니라

1.その後 イエスは ガリラヤの湖,すなわち,テベリヤの湖の向こう 岸へ 行かれた.
2.大ぜいの 人の群れが イエスにつき 從っていた.それは イエスが 病人たちになさっていたしるしを 見たからである.
3.イエスは 山に登り,弟子たちとともにそこにすわられた.
4.さて,ユダヤ人の祭りである 過越が 間近になっていた.
5.イエスは 目を上げて,大ぜいの人の群れがご 自分のほうに 來るのを 見て,ピリポに 言われた.「どこから パンを 買って 來て,この人々に 食べさせようか.」
6.もっとも,イエスは,ピリポをためしてこう 言われたのであった.イエスは ご自分では しようとしていることを 知っておられたからである.
7.ピリポは イエスに答えた.「めいめいが 少しずつ 取るにしても,二百デナリのパンでは 足りません.」
8.弟子のひとり シモン·ペテロの兄弟 アンデレが イエスに 言った.
9.「ここに 少年が 大麥のパンを五つと 小さい魚を 二匹持っています.しかし,こんなに 大ぜいの 人々では,それが 何になりましょう.」
10.イエスは言われた.「人々をすわらせなさい. 」その場所には 草が多かった.そこで 男たちはすわった.その數はおよそ 五千人であった.
11.そこで,イエスは パンを 取り,感謝をささげてから,すわっている 人々に分けてやられた.また,小さい 魚も 同じようにして,彼らにほしいだけ 分けられた.
12.そして,彼らが 十分食べたとき,弟子たちに 言われた.「余った パン切れを,一つもむだに 捨てないように 集めなさい.」
13.彼らは 集めてみた.すると,大麥のパン五つから 出て來た パン切れを,人々が食べたうえ,なお 余ったもので 十二のかごがいっぱいになった.
14.人々は,イエスのなさったしるしを 見て,「まことに,この方こそ,世に 來られるはずの預言者だ.」と 言った.
15.そこで イエスは 人々が 自分を王とするために むりやりに 連れて 行こうとしているのを 知って,ただひとり, また 山に 退かれた
Date : 2023-10-22 13:30:48    Read : 13 
 출4:10-17절, / 말하라.(선포하라)
작은예수
 마태복음 8:5-13절, 제목:내가 가서 고쳐주리라.
작은예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