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고이와성산교회
 
 
 
2019/11/12
마태복음 18:15-35절, 제목: 어느 길...
Click !!

Name  
   작은예수
Subject     사무엘하 강해 (6)
성경:삼하 5:1-12절,     제목: 누구와 함께할 것인가?
설교: 김병철 목사,   일시:2019년 8월 18일(주일설교)

  서  론: 오늘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은혜의 말씀에 제목은“누구와 함께할 것인가? ”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기를 소원합니다. 이 말씀을 읽고 듣고 보는 가운데 성령 하나님의 폭포수와 같은 은혜가 저와 여러분들 심령 가운데 넘쳐나시기를 존귀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서양에서는 결혼하는 딸에게 어머니가‘얼어붙은 눈물 frozen tears’이라 불리는 진주를 선물한다고 합니다. 딸이 결혼 후 흘릴 눈물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하필 진주일까요? 진주는 조개의 몸에 들어온 모래알이 변해 생성된 보석입니다. 몸에 모래알이 들어오면 조개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나카’라는 특수한 물질을 생성해 살갗에 파고든 모래알을 끊임없이 감싸 든지, 아니면 모래알을 무시해버리든지 하는 것입니다. 나카가 모래알을 감싸면 엄청난 고통이 뒤따릅니다. 그러나 고통의 분량만큼 진주는 점점 커집니다. 결국, 오색 찬란한 진주 보석이 탄생하는 것이죠. 그러나 조개가 모래알을 무시하면 통증은 없지만, 살이 곪아 곧 죽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원치 않는 모래알이 들어와 혹독한 고통을 안겨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그 고통을 기도와 인내로 맞서는 사람은 결국‘눈물의 진주 보석’을 만들게 되는 것입니다.

  고생 끝에 드디어 통합된 왕이 된 다윗입니다. (1-5절) 그의 나이 삼십 세가 되어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옛 속담에‘고진감래’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 뜻은 ‘쓴 것이 다하면 단 것이 온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 ‘힘든 일이 지나면 즐거운 일이 온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아마도 다윗에게 적합할 것 같습니다. 다윗은 골리앗을 물리치고, 잠깐은 행복과 기쁨이 그 가정에 임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사울의 시기와 질투로 인하여 다윗은 사울을 피하여 도망 다니는 신세가 되었고, 결국 망명 생활을 떠나지 않으면 살 수가 없는 상황까지 몰리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가드 왕 앞에서 수염에 침을 질질 흘리고, 마치 미친 짓을 하면서까지 생명을 연명해야만 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다윗이 무려 10년 이상 고생 끝에 헤브론에서 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7년 후에 드디어 유다와 이스라엘 통합된 나라의 왕으로 등극을 하게 됩니다. 표면적으로는 유다와 이스라엘 장로 그리고 그 백성들이 다윗을 왕으로 세웠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을 왕 되게 하신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요. 섭리였음을 우리가 잊어서는 절대 안 됩니다. 다윗이 자기 자신이 똑똑해서 왕이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를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셨다가 이렇게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마치 바울 사도의 고백처럼“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간혹가다가 스스로, 자신이 뭐, 엄청나게 잘나고, 똑똑해서, 자신이 경험한 것을 토대로 잘 활용하여 여기까지 왔다고 착각할 때가 있습니다. 아닙니다.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우리는 단 한 시간도, 아니 단 1분 1초도 살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 것은 견고한 믿음이요, 성숙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찬송가 가운데“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한이 없는 주의 사랑 어찌 이루 말하랴? 자나 깨나 주의 손이 항상 살펴주시고, 모든 일을 주안에서 형통하게 하시네.”그래요. 하나님의 은혜요, 섭리요, 축복인 줄 믿습니다. 이와 같은 것을 깨닫고 인식하며 살아 가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삼하5 장12절“다윗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세우사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신 것과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그 나라를 높이신 것을 알았더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그 나라를 높이신 것을 그는 알았더라고 했는데, 여기에서‘알았다.’히브리어로‘야다’라는 이 말은 지식적으로 하나님을 알았다기보다는 직접 몸으로, 피부로 느끼고 경험(체험)했다는 의미가 더 강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예수님을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성령님, 성부 하나님을 누구라고 생각하시나요? 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지금까지 자기 자신이 살아오면서 배웠던 지식으로 하나님을 접근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접근하지 마십시오. 자신이 경험한 하나님, 몸으로 체득된 그 하나님을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부모님이 믿는 하나님 말고, 주변 사람들이 경험한 하나님을 말하지 말고, 성경공부하면서 느꼈던 그런 하나님 말고, 책에서 배운 지식적인 하나님이 아니라 진짜 내가 몸소, 느끼고 체험한 그 하나님을 느끼고 말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도마는 관념적으로 예수님을 생각했고, 지적으로, 이성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으면 믿을 수 없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아무리 예수님이라도 죽으셨던 분이 어떻게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말인가? 그것은 말도 안 되는 것이지! 도마는 제자들을 향하여 이렇게 외칩니다. 그래도 배웠다고 하는 사람들이 최소한 이성적인 것과 비이성적인 것은 구분해야지, 합리적인 것과 비합리적인 것은 구분할 줄은 알아야 하는 것 아닌가? 이러면서 상당히 유식한 척 제자들을 오히려 설득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들의 상식을 뛰어넘는 분이십니다. 이성을 초월하시는 분이십니다. 기적과 표적을 일상적으로 일으키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셨습니다.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인 일들이 도마가 현장에 있으면서 얼마나 많이 체험했습니까? 예수님께서 물 위로 걸으신 것이나, 오병이어의 사건이나,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사건들을 이성적으로, 합리적으로 설명 가능한 것입니까? 자신이 직접 체험하고도 막상 자신에게 닥친 문제 앞에서는 이성을 찾으려 했던 사람이 바로 도마였습니다. 그러나 도마 또한 예수님을 직접 체험, 직접 만나고 난 이후에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나의 주님이시오.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말입니다. 그리고는 도마는 나의 주님이시오.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고 고백하는 동시에 열방을 향에 나아가 선포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이후에 그는 인도로 선교를 떠나고 순교의 잔을 마시게 되지 않습니까?

  또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을 믿는 것을 마치 미신적, 샤머니즘적으로 접근하려고 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기독교를 다른 종교와 유사한 종교로 전락시키는 것이 샤머니즘적, 기복주의적 신앙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니엘처럼‘그리 아니 하실지라도’의 신앙이 아니라 내가 원하고, 바라는 것을 이루어주시는 분으로 예수님을 자신 수준으로 끌어내려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다윗은 자기를 왕으로 세우신 분이 하나님이시고,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고백합니다. 다음 시간에 이 부분을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자신은 단지 하나님의 대리 통치권자임을 그는 알고 있었고, 이스라엘을 위해서 그 나라를 높이셨던 분도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사실 또한, 다윗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지식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몸소 체험했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점점 강성한 이유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하셨기 때문입니다.(삼하5:10절) 사울과 다윗의 차이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여호와께서 사울에게 떠나셨고, 다윗에게는 여호와께서 함께하신 것이 그 차이점입니다. 개인적인 실력과 능력이 얼마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여호와께서 함께하셨느냐? 하시지 않느냐가 문제인 것입니다. 사무엘하 3:1절“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 사이에 전쟁이 오래매 다윗은 점점 강하여 가고 사울의 집은 점점 약하여 가니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점점 강하여 가고, 사울의 집은 점점 약해진 이유를 이곳에서 찾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후에 다윗은 그의 부하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가서 그 땅 주민 여부스 사람을 치려 할 때, 그들이 다윗에게 나와서 너희는 결코 이리로 들어오지 못할 것이다. 맹인과 다리 저는 자라도 너를 물리칠 수 있다고 호언장담을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신의 부하들과 함께 그곳 시온성을 치고 그 성을 빼앗서 다윗의 성으로 이름하였습니다. 이처럼 다윗은 점점 강하게 되었습니다. 다윗이 점점 강하게 된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본문을 함께 읽어봅시다. 삼하 5:10절“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고 했습니다.

  그다음은 다윗의 가족사를 또, 언급합니다. 다윗이 헤브론에서 자녀를 6명을 낳았다고 했지요. 그리고 3명을 주목하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누구지요.‘암논, 압살롬, 아도니냐’입니다. 그리고는 예루살렘에서는 11명의 자녀를 낳습니다. 11명 가운데 기억해 두어야 할 인물은 솔로몬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함께하는 자들은 지금 당장 힘들고 어려우며, 고통스러운 일들이 있다 하더라도 반드시 하나님께서 쓰신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 다윗은 참고 인내하는 이 훈련에 합격하였습니다.

  이것은 다윗뿐 아니라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개인, 가정, 공동체, 교회 심지어 나라까지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복된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대한민국은 어떻습니까? 대한민국 애국가 가사 안에“하나님이 보호하사 우리나라 만세”라는 가사가 들어 있는 나라입니다. 전 세계 애국가 가운데‘하나님이 보호하사’라는 가사가 들어있는 나라가 어디에 있습니까? 심지어 미국도 없습니다. 그러니 대한민국은 망하고 싶어도 망할 수 없는 나라입니다. 원래 조선이라는 단어를 영어로 Chosun 입니다. 그 뜻은‘선택’입니다. 그러니깐 선택된 민족이라는 말이지요. 할렐루야! 이렇게 좋은 애국가를 지금 국회의원 중에 어떤 분은 애국가를 부르지 말자고 외치는 사람도 있습니다. 애국가를 작사 한 분이 안익택 씨인데, 그가 일본에서 태어났고, 공부했기 때문에 친일파의 잔재라는 것이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개인과 가정과 우리나라와 함께하기를 축원 드립니다. 창세기 39:1-5절에 보면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요셉이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요셉이 이끌려 애굽에 내려가매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애굽 사람 보디발이 그를 그리로 데려간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요셉을 샀습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요셉이 그의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고 자기의 소유를 다 그의 손에 위탁하니 그가 요셉에게 자기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또한 요셉이 감옥에 있을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그냥 내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창세기 39:21-23절“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간수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요셉과 함께하셨던 여호와께서는 다윗과도 함께하시므로 다윗은 점점 강하여졌습니다. 사실 전쟁을 하다 보면 그 싸움에서 이길 때도 있고, 질 때도 있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성경 역사 가운데에서 다윗의 경우는 단 한 번도 전쟁에서 패한 적이 없었던 인물 중에 유일한 자입니다. 완전한 승리자의 모형입니다. 다시 말하면 다윗은 죄와 사망에서 완전히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모형이요,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원수 대적인 마귀와 싸움에서 우리가 당당히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하시고, 그분과 동행하는 삶을 산다면 반드시 이기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그러니깐 내가 누구와 함께하는가? 그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목회자들과 탁구 칠 때가 있습니다. 탁구를 그냥 치는 것이 아니라 음료수 내기 시합을 합니다. 그러면 대체 적으로 탁구를 잘 치시는 목사님과 한편이 되기를 원해요. 왜냐하면, 잘 치시는 분과 한편이 되면 내가 이길 확률이 높잖아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얼마나 많은 난관이 있겠습니까? 그럴 때, 우리의 영원한 친구가 되시고, 변함없는 후견인이 되시는 예수님과 한편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그러면 반드시 100% 승리하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어느 한 날을 잡아, 기회 있는 대로 사무엘상, 하에서 해석하기, 이해하는 데 난해한 부분들 성도님들과 함께 나눌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성경을 읽다 보면‘왜!’라는 의문이 많이 들 때가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그렇게 훌륭했던 다윗은 아내가 이렇게 많은가? 하나님께서는‘일부일처제’를 허락했지‘일부다처제’를 허락하시지는 않았지 않았는가? 그런데 왜! 다윗은 아내를 이렇게 많이 두었는가? 그것을 왜! 용납하신 것인가? 또,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들이 실패하고, 세상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데 그냥 두고만 보고 계시는가? 등등의 이야기를 한번 다루겠습니다.

  철저히 하나님을 의지하며 전쟁에 임하는 다윗입니다. (17-25절) 본문을 잠깐 설명하겠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는 말을 듣고 그를 잡으려고 올라왔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들이 온다는 것을 알고 요새로 들어갔습니다. 이때 블레셋 사람들은 르바임 골짜기에 도착하여 그곳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여호와께 '내가 나가서 블레셋 사람들과 싸울까요? 주께서 저들을 내 손에 넘겨 주시겠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여호와께서는 '좋다. 나가서 싸워라. 내가 그들을 네 손에 넘겨 주겠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나가 바알브라심에서 그들과 싸워 격퇴하고 이렇게 외쳤습니다. '여호와께서 물을 쳐서 흩어 버리듯이 내 앞에서 내 대적을 쳐서 흩어 버리셨구나!' 그렇게 해서 그곳 이름을 바알브라심이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그곳에 자기들의 우상을 버리고 도망갔으므로 다윗과 그의 군대는 그 우상들을 치워 버렸다.

  그러나 블레셋군은 르바임 골짜기로 다시 돌아와서 그곳에 포진하고 있었습니다. 왜! 궁극적으로는 이기고 싶었겠지요. 그리고 잃어버렸던 우상을 찾으러 올라온 것입니다. 이때 다윗이 어떻게 해야 좋을지 여호와께 또다시 묻자 여호와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정면 공격을 피하고 그들 뒤로 돌아가 뽕나무 숲 근처에서 공격 태세를 취하고 있다가 뽕나무 꼭대기에서 행군하는 발자국 소리가 들리거든 너는 즉시 공격을 개시하라! 이것은 나 여호와가 너보다 앞서가서 블레셋 군을 치겠다는 신호이다.' 그래서 다윗은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게바에서 게셀에 이르기까지 줄곧 블레셋 군을 쳐서 격퇴시켰습니다. 본문에서 여호와께서 너보다 앞서가서 블레셋군과 싸우겠다는 신호라는 말씀에 주목하셔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다윗이 싸우는 것 같지만 실질적으로 여호와께서 먼저 가셔서 싸우셨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들이 인생을 살면서 우리가 잘나고, 똑똑해서 지금까지 이 자리까지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가셔서 싸워주셨기 때문에 지금의 우리가 여기 이 자리에 있는 줄 믿습니다. 이처럼 다윗은 전쟁할 때마다 하나님께 묻고 실행에 옮겼던 사람입니다. 앞 전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다윗은 전쟁에서 단 한 번도 패한 적이 없었던 인물이라고 했지요. 그 원인이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다윗이 하나님께 간구, 묻고 전쟁을 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다윗은 평생 동안 철저하게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며 살았던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스보셋은 권력자, 실력자를 의지했지만, 다윗의 경우는 눈에 보이지 않으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했다는 것이 다릅니다. 사실 다윗은 전쟁에 능한 자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전쟁하면 신물이 날 정도인 사람이 다윗입니다. 그가 전쟁을 얼마나 많이 했고, 피를 얼마나 많이 흘렸는지는 여러분들도 잘 아실 줄 압니다. 그가 성전을 지으려고 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말씀하시기를 네 마음은 갸릇하다마는 너의 손에 피가 가득하니 성전을 지을 수 없다. 너 대신 네 아들 솔로몬이 성전을 지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기억나시나요. 피를 그렇게 많이 흘린 다윗이라면 전쟁에 관련하여 병법, 싸움에 대한 전략하면,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박식한 사람이 다윗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전쟁할 때 지금까지 자기가 경험했던 것을 토대로 알아서 할 법도 한데 다윗은 그때, 그때마다 여호와 하나님께 물었다는 것을 보면 그가 얼마나 하나님을 철저하게 신뢰하고 의지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더 중요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인가? 하면 하나님께 묻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을 때, 그대로 순종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을 때, 자기 자신의 경험과는 전혀 맞지 않았을 때, 그것을 순종하기란 더욱더 힘든 것이겠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본문 23-25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23. 다윗이 여호와께 여쭈니 이르시되 올라가지 말고 그들 뒤로 돌아서 뽕나무 수풀 맞은편에서 그들을 기습하되 24. 뽕나무 꼭대기에서 걸음 걷는 소리가 들리거든 곧 공격하라 그 때에 여호와가 너보다 앞서 나아가서 블레셋 군대를 치리라 하신지라. 25. 이에 다윗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행하여 블레셋 사람을 쳐서 게바에서 게셀까지 이르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호와의 명령대로 행하여 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많은 이들이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어떨 때는 새벽기도, 철야기도, 작정기도, 심지어 식음을 전폐하면서까지 금식기도까지 얼마나 많이 합니까?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다급해지면 하나님께 묻습니다. 기도합니다. 철야, 금식합니다. 문제는 여호와께서 응답해 주셨을 때, 그 응답이 내 마음에 맞든 안 맞든 간에 그대로 순종할수 있겠느냐? 는 것입니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응답이 임하면 룰룰랄랄 하면서 순종하겠지만 자기의 생각과 맞지 않을 때, 순종하기란 쉽지 않은 것입니다.

  예화) 나아만 장군입니다. 열왕기하 5:11절에 보면“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이르되 내 생각에는 ⓵그가 내게로 나와 ⓶서서 ⓷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⓸그의 손을 그 부위 위에 흔들어 나병을 고칠까 하였도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떻다고 하는 것입니까? 자기 생각과 전혀 맞지 않게 행동했다는 말입니다. 엘리사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그의 종이 나와서 하는 말이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씻으라 네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리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나아만은 자기에 대해서 의전을 어떻게 할 것을 은근히 기대했던 것입니다. 그래도 군대장관(국방부 장관)인데 융숭한 대접을 기대하지는 않아도 최소한 예의는 갖출 줄 알았는데 세상이 이런 푸대접을 받다니 도저히 자기 자신에게 용서할 수 없고, 기분이 엄청 나빴 노를 발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여기에서 나아만 장군은 자기가 무엇 때문에 이스라엘에 왔는지, 그 본질을 잠깐 잊어버렸습니다. 나아만 장군이 왜! 이스라엘에 갔습니까? 나병을 고치러 간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에게 대접을 소홀했다고, 자신 생각과 맞지 않는다고 화를 냈다는 것입니다. 그는 본질을 잃어버렸던 것입니다. 나아만이 본질을 잃어버린 것을 깨닫게 해 준 사람이 있으니 무명의 병사였습니다. 그가 말하기를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큰일을 행하라고 했어도 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요단강에서 일곱 번 몸을 씻으라는 것을 못하십니까?”점잖게 표현한 것입니다. 그까짓 자존심에 문제가 아닙니다. 일단 나병을 고치는 것이 중요하지 그놈의 자존심이 뭐라고 그러십니까? 표현하자면 그런 것입니다. 사실 내 생각과 내 마음에 맞지 않으면 그것을 실행에 옮기기란 쉽지 않은 것입니다.

  예화) 어떤 젊은이가 캄캄한 밤중에 산길을 가다가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다가 간신이 나뭇가지를 하나를 붙들었습니다. 얼마나 다급했겠습니까? 이럴때에는 신앙심이 엄청 회복이 빨라집니다. 하나님 용서해 주세요. 지금 제가 지었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세요. 다시는 이런 못된 짓은 하지 않을 께요. 한 번만 살려주세요. 다시는 주일 빼먹지 않을 것이고, 십일조는 떼먹지 않고, 꼬박꼬박 잘 드릴 것이며, 돈 떼먹은 것도 갚을 것입니다. 이번 한 번만 살려주세요. 목이 터져라외쳤습니다. 나중에는 하나님 저의 기도소리를 듣고는 계십니까? 손목에 힘이 없어 곧 떨어져 죽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산에서 음성이 들려오기를 정말이냐? 그럼요. 정말이고 말고요. 그런데 누구세요. 네가 찾고 있는 하나님이다. 감사합니다. 하나님 살려주세요. 살고 싶다면 그 나뭇가지를 놓아라. 하나님 이 가지를 놓으면 죽어요. 무슨 말씀이세요. 살고 싶으면 그 나뭇가지를 놓아라......그때 청년에 대답 왈‘거기 다른 사람 없습니까? 나 좀 살려주세요.’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들의 모습과 유사하지 않습니까?

  말씀을 맺기를 소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 인생의 긴 터널을 통과 하고있는 중입니다. ‘고진감래’는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이지요. 지금 우리는 내게 주어진 고난을 잘 이기고 계십니까? 언젠간 분명 정상에서 활짝 웃을 저와 여러분들을 생각해 봅시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아브람을 아브라함되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다윗을 성군 다윗 되게 하신 하나님, 다윗을 이스라엘 왕으로 세우신 주께서 오늘 저와 여러분들을 이 자리에 서게 하신 줄 믿습니다. 다윗과 함께하신 하나님께서 오늘 저와 여러분! 가정과 공동체, 교회와 대한민국에 함께 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두려울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남은 인생을 철저하게 주님을 의지하고 그분과 동행하는 삶을 사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기도하겠습니다.


1.イスラエルの 全部族は,ヘブロンのダビデのもとに 來てこう 言った. 「ご覽のとおり,私たちは あなたの 骨肉です.
2.これまで,サウルが 私たちの王であった 時でさえ,イスラエルを動かしていたのは,あなたでした.しかも,主はあなたに 言われました.『あなたがわたしの民 イスラエルを牧し,あなたが イスラエルの君主となる.』」
3.イスラエルの全長老が ヘブロンの王のもとに 來たとき,ダビデ王は,ヘブロンで 主の前に,彼らと契約を 結び,彼らは ダビデに 油をそそいで イスラエルの 王とした.
4.ダビデは 三十歲で王となり,四十年間,王であった.
5.ヘブロンで 七年六か月,ユダを治め,エルサレムで 三十三年,全イスラエルと ユダを 治めた.
6.王とその部下がエルサレムに 來て,その地の住民 エブス人のところに 行ったとき,彼らは ダビデに 言った.「あなたはここに 來ることはできない.めしいや 足なえでさえ,あなたを 追い 出せる.」彼らは,ダビデが ここに 來ることができない,と考えていたからであった.
7.しかし,ダビデは シオンの 要害を 攻め取った.これが, ダビデの町である.
8.その日 ダビデは,「だれでも エブス人を 打とうとする 者は,水汲みの地下道を 拔けて,ダビデが 憎む 足なえとめしいを 打て.」と 言った.このため,「めしいや 足なえは 宮にはいってはならない.」と 言われている.
9.こうして ダビデは この要害を 住まいとして,これを ダビデの町と呼んだ.ダビデは ミロから 內側にかけて, 回りに 城壁を 建てた.
10.ダビデは ますます 大いなる 者となり,万軍の神,主が 彼とともにおられた.
11.ツロの王 ヒラムは,ダビデのもとに 使者を 送り,杉材,大工,石工を 送った.彼らは ダビデのために 王宮を 建てた.
12.ダビデは,主が彼を イスラエルの王として 堅く立て,ご自分の民 イスラエルのために,彼の王國を 盛んにされたのを 知った.
Date : 2019-08-18 09:46:23    Read : 210 
 사무엘하 강해 (7)
작은예수
 사무엘하 강해 (5)
작은예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