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고이와성산교회
 
 
 
2019/11/12
마태복음 18:15-35절, 제목: 어느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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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예수
Subject     사무엘하 강해 (11) 영적인 눈과 귀 그리고 입을 열라.
성경:막7:31-37절, 제목: 영적인 눈과 귀 그리고 입을 열라.
설교:김 병철 목사,    일시:2019년 9월 29일(주일 날 설교)
  서  론: 오늘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은혜의 말씀에 제목은“영적인 눈과 귀 그리고 입을 열라.”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기를 소원합니다. 이 말씀을 읽고 듣고 보는 가운데 성령 하나님의 폭포수와 같은 은혜가 저와 여러분들 심령 가운데 넘쳐나시기를 존귀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미국 매사추세츠 주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바닷가를 거닐고 있던 어떤 사람이 로프에 걸려 그만 바다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헤엄을 칠 수 없었던 그는 있는 힘을 다해 구조 요청을 했습니다. 그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은 가까이에서 일광욕을 즐기고 있던 젊은이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그 젊은이는 생사의 기로에서 간절히 도움을 청하고 있는 사람을 외면한 채 일광욕만을 즐겼고, 바다에 빠진 사람은 결국 죽고 말았습니다.

  이에 익사자의 가족들은 그처럼 무관심했던 젊은이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습니다. 그러나 현행법상 그 젊은이에게는 법적 책임이 없는 것으로 판결이 났습니다. 비록 그가 법적으로는 죄가 없는 사람일지는 몰라도 사랑이 뭔지 모르는 양심 없는 사람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무관심은 죄입니다! 당신은 혹 가족이나 이웃에게 무관심하지는 않으신지요? 남편이나, 자녀들이 믿음이 견고히 서 있지 않고 있다면 우리는 막중한 책임과 동시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들의 인생에 최대 관심사는 무엇입니까? 돈 벌어, 부자가 것입니까? 출세, 성공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명성, 명예를 쌓는 것입니까? 젊은이들의 관심은 무엇입니까? 취업, 친구, 연애, 성(sex)입니까? 여성들은 아름다워지는 것입니까? 남성들은 자신의 일에 대한 자기 성취감입니까? 우리가 진정으로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본문을 잠깐 생각해 봅시다. 예수님은 두로 지방에서 나와 시돈과 데가볼리 지방을 거쳐 갈릴리 호수에 돌아오셨을 때에, 그때 사람들이 귀먹은 반벙어리 한 사람을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손을 얹어 안수해 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을 따로 어디론가 데리고 가서 손가락을 그의 두 귀에 넣고 또 손가락에 침을 뱉어 그의 혀를 만지셨습니다. 그리고서 예수님께서는 하늘을 우러러보고 숨을 쉬시며 '에바다!' 하고 외치셨다.‘에바다’라는 것은 '열려라.' 는 뜻입니다. 그러자 곧 그의 귀가 열리고 혀가 풀려 제대로 말을 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일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못하게 하셨으나 그럴수록 사람들은 소문을 널리 퍼뜨렸습니다. 사람들은 다 놀라 '참 광장한 일이다. 귀머거리를 듣게 하고 벙어리를 말하게 하다니!' 그가 참으로 잘 하였다고 말하며 감탄하였다는 것이 본문입니다.

  귀 먹고, 말 더듬는 자는 과연 누구인가? (32절) 본문에 귀먹고, 말 더듬는 자의 대한 정보가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추축할 수 있는 것은 그가 갈릴리 출신일 확률이 높다는 것뿐입니다. 또한 사람들이 오랫동안 그를 알고 지냈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왜냐하면 그가 어떤 사람인가를 너무나 잘 알았고, 지금까지 그의 생활을 낱낱이 보았기 때문에 안타까운 마음이 불일 듯 일어나서 그를 예수님께 데려간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윽고 예수님께서 갈릴리 호수가의 오셨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사람들이 때는 이때라 귀먹고, 말 더듬는 이 불쌍한 사람을 예수님께 데리고 가서 그에게 안수해 주시기를 부탁, 간청, 간구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학생 수련회 때에, 가끔 장애인 체험학습을 할 때가 있습니다. 눈을 가리고, 몇 시간 동안 말하지 않는 훈련 등을 합니다. 그리고 나서 학생들에게 소감문을 쓰라고 하면 대체적으로 아이들이 이렇게 말합니다.“우리는 단 1-2시간정도 했는데도 너무나도 힘들고, 그 불편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장애들이 얼마나 힘들까를 생각하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라고 말을 합니다.

  저는 일가 친척가운데 말을 잘 못하고, 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하시는 분이 계셨습니다. 방학 때에 저희 집에 약 일주일 동안 계셨는데 자녀들과 소통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때에는 수화가 그렇게 발달이 안 되어서, 대충 손짓으로, 눈으로 알아듣고는 생활을 하는 것을 보았는데요. 어린 제가 보아도 정말 힘들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의사소통이 전혀 안 되는 것입니다. 단지 그 가족들만 대충 알아듣는 것 같았습니다. 사실 당사자는 답답하기 이를 때가 없을 것입니다. 여러 번 반복하여 무슨 의사표시를 하는데, 상대방이 그것을 못 알아들으면 짜증을 내곤 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예수님 당시는 말할 것도 없지요. 당시에 수화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무슨 통역기가 있었던 것도 아니잖습니까? 그런 것이 아무것도 없는 시대잖아요. 생각해 보세요. 소리를 들을 수 없고, 말을 제대로 못하는 것은, 일상생활에서 그 불편함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영적인 부분도 이처럼 하나님의 소리를 듣지 못하고, 하나님께 아파도 아프다고도 말 못하는 이들이 의외에 교회 안에서도 많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교회 안에서도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고, 하나님께 제대로 부르짖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귀한 음성이 들리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십니까? 안 들린다는 말은 둘 중에 하나입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경우입니다. 요한복음 10:14절“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알고 내 음성을 듣느니라.”고 말합니다. 아멘입니까? 둘째는 그 마음과 생각이 세상 것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아마도 이 가운데 계신 분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아닐 확률은 낮겠지요. 그렇다면 두 번째에 해당되시는 분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 마음과 생각이 세상 것으로 가득 차 있어서 주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경우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고린도전서 2:11-13절 “11.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12.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13.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의 귀가에는 어떤 소리가 들리십니까? 세상적인 소리입니까? 아니면 영적인 하나님의 음성입니까? 세상적인 소리라 함은 세상에 관련된 소리일 것입니다. 인생을 살면서 육체의 유익을 위한...성공, 부귀, 영화, 세상 것에 힘을 다 쏟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것으로 인하여 정작 들어야 할 것을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한다면 우리는 지금 결단해야 하지 않을까요?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지를 다시금 결단해야 합시다. 그분의 음성을 듣기 위해 무릎을 꿇어야 하지 않을까요? 시간을 정하여서 하나님의 전에서 기도를 하든지! 교회가 아니라면 집에서라도, 때로는 기도하는 장소를 정하여 무릎을 꿇고 내가 원하는 것만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을 구하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 아버지께 무릎을 꿇지 못하게 하는 그 무엇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입니까? 사람들은 바쁘다는 핑계를 됩니다. 요사이 눈코 틀 새 없이 바빠요. 그렇다면 한번 물어보세요. 나는 왜! 이렇게 바빠야 하는 것인가요? 그렇게 바쁘게 살면 내게 어떤 유익이 있는가? 지금 내가 말하고 있는 그 유익이 진정으로 내 인생에 유익한 것은 맞는가? 조용히 하나님 아버지께 질문해 봐야하지 않을까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에게 열정을 갖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지 말라는 말도 아닙니다. 성도님들 중에는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아니! 지난주에는 최선을 다하며 살라고 해놓고 왜! 이제 와서 바쁘게 살지 말라는 것입니까? 성도 여러분! 바쁘게 사는 것과 최선을 다하는 삶은 다릅니다. 진정한 삶의 목적 없이 그냥 분주한 것은 바쁘게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최선을 다하는 삶은 아니잖아요. 그러니깐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목적을 향하여 달려가는 것과 분주하게, 바쁘게 사는 것은 엄연히 다른 것입니다. 무엇이 저와 여러분들을 그렇게 바쁘고, 분주한 곳으로 몰아가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음성도 듣지 못하면서,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할 때에 부르짖지도 못하며 살 정도로 그렇게 바쁘고, 분주에서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유익과 이익이 되기에 뒤도 돌아보지 않으며, 무작정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 마냥 달려가고 계시는 것입니까? 엠마오로 내려갔던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고, 이후에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뜬소문도 듣기는 들었지만, 제자들은 그냥, 무작정 고향으로 내려가기 바빴습니다. 그들은 눈과 귀는 있었으나 보지 못하고, 듣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고 난 이후에야 제자들은 영적 눈을 번쩍 뜨면서 사명을 찾아, 사명을 이루기 위해, 다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장면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것이 누가복음 24장에 나옵니다. 이 시간 저와 여러분들이 다시 한 번 깊이 자신을 돌아보시는 시간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엠마로 마을로 찬양...)

  사람들은 왜! 귀 먹고, 말 더듬는 자를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안수하여 주시기를 부탁했을까요? (32절) 본문에는 다른 이야기가 나오지 않아요. 아마도 이 사람은 갈릴리 출신이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사람들은 그를 잘 알고 있었고, 그의 생활을 누구보다 안타깝게 여기며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마침 예수님께서 갈릴리에 오셨다는 말을 듣자마자 이 귀먹고, 말 더듬는 그를 동네 사람들이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는 그를 고쳐주시기를 부탁했던 것입니다. 앞전에는 말씀드린 것은 그리스도인들이라도 할지라도 영적인 눈이 감겨서 주님의 음성을 듣지도, 그 분께 부르짖지도 못하는 이들에 대해 말했다면, 이번에는 진짜로 영적으로 주님을 알지 못하고, 그 주님을 찾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 좀 해 볼까합니다. 이들은 아예 주님의 존재자체를 적극적으로는 부정하고, 소극적으로는 찾지 않는 자들입니다. 언제 이들이 주님을 찾게 될까요. 그렇습니다. 자신의 삶에 한계가 찾아왔을 때에, 도저히 자기 혼자, 자신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을 때, 주님을 찾거나 부르짖을 것입니다. 평상 시 때는 전혀 주님을 찾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찾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위기가 찾아올 때, 한계가 닥쳤을 때, 그들은 무릎을 꿇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 이와 같은 이들이 얼마나 많습니다.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려는 자들, 나는 할 수 있어, 나의 실력과 능력, 지금까지의 세상 경험으로 미루어보아! 나는 이 세상을 넉넉히 잘 살아 갈수 있어! 그들은 말합니다.‘요사이 나약한 젊은이들이 종교를 의지하지! 그들이 종교에 빠져 그 많은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고 있지! 그 많은 시간과 정력을 자신의 실력(스팩) 쌓는 일에 투자를 해 보라고 그럼 그들도 지금보다는 훨씬 낳은 삶을 살 수 있을 거야!’라고 말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들으면 그 말이 100% 맞다 고 맞장구를 칠 것입니다. 그래요. 해 보라고해! 라고 해 주고 싶습니다. 요사이 젊은이들이 의지력이 약해요.  얼마나 실력이 없으면 신을 의지하겠어! 다 부질 없는 일이지. 인생살이는 다 자기가 할 나름이야! 얼마나 자기 자신이 처세술을 잘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거지 뭐! 이러면서 마치 엄청나게 호인처럼, 세상에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것처럼 말들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줄 아십니까? 그렇게 호언장담했던 이들 또한, 감기 앞에서도 쩔쩔 매는 존재라는 사실을 그들은 깜빡깜빡 잊곤 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귀먹고, 말 더듬는 이 사람은 자신의 힘으로 어쩔 수가 없는 존재이었습니다. 이 사람이라고 실력을 갖추고 싶지 않았겠습니까? 인생을 잘 살아보고 싶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성도 여러분! 우리 인생 속에는 언제나 그랬듯이 사각지대가 있게 마련입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그런 곳 말입니다. 이것은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절대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인생의 사각지대라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렇게 인생에 절망 가운데 있는 사람에게 희망은 누구겠습니까? 절대 절명의 위기가운데 있는 자들에게 희망은 과연 누구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우리의 영원 구주 예수 그리스도인 줄 믿습니다. 희망의 아이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절망 가운데 있는 자들에게, 자기 스스로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이들에게 누가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해 줄 수 있겠습니까?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그 한 사람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할 수 있는 자들의 조건이 있다면 첫째는 먼저 그가 예수님이 누구인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만난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그 예수님 때문에 인생에 참된 기쁨을 경험했던 자가 예수를 말해 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복음이 무엇인지 알아야 증인이 될 것이 아니겠습니까? 둘째, 성령으로 거듭난 자입니다. 성령을 힘입은 자, 그가 바로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성령인 네게 임하면 너희가 내 증인이 될 것이다.’라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셋째, 영혼을 향한 애타는 마음, 그들을 바라보고 안타까워하는 심정을 가진 자가 희망이 없는 이들을 예수님께 모시고 올 수 있게 되는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에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불쌍하게 생각했던 사람들이 예수님께 데리고 왔던 것처럼 저와 여러분들도 병들고, 헐벗으며, 죄 문제로 인하여 고민하고, 자신의 힘으로 어찌 할 수 없는 이들이 예수님께로 나아갈 때에, 가이드 역할을 저와 여러분들이 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문제의 근원부터 해결하신 예수님이십니다.(33-35절) 본문을 자세히 보면 예수님께서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 병든 자를 고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을 따로 어디론가 데리고 가서 손가락을 그의 두 귀에 넣고 또 손가락에 침을 뱉어 그의 혀를 만지셨습니다. 그리고서 예수님은 하늘을 우러러보고 한숨을 쉬시며 '에바다!' 하고 외치셨습니다.  에바다 라는 말은 '열려라.' 는 뜻입니다. 그러자 곧 그의 귀가 열리고 혀가 풀려 제대로 말을 분명하게 말하고, 듣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예수님께서는 일부를 고치셨다고 해 봅시다. 오히려 조롱거리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의 문제를 아시고 모두 다 근원부터 고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고침 받은 이 사람이 정확히 누구인지는 모르겠으나, 그가 예수님을 믿고 따랐을까요? 아니면 자기 맘대로 인생을 살며 낭비했을까요? 그것은 물어보나마나 그 답은 그가 주님을 따랐을 것이 분명합니다. 사람들이 안타까워하는 심정으로 귀먹고, 말더듬이 사람을 예수님께 데리고 오신 것을 아셨습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고치시지 않고, 따로 어디론가 그를 데리고 가서 고치셨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했지만, 고침 받은 이 사람은, 귀먹고, 말 못했던 이 사람은 눈으로 직접 예수님을 경험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귀와 입은 문제가 있었지만, 그의 눈에 이상이 없었으니깐요.

  주님께서는 문제인생의 근원부터 해결하셨습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중풍병자를 데리고 친구들과 그 중풍병자의 믿음을 보시고 그를 고치시기 전에 내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말씀하시잖아요. 이 말은 육체의 질병을 고치시기 전에 인생 문제의 근원부터 해결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육체의 질병을 고치신 사건입니다. 이것이 우리 주님의 방법입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봅시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귀먹고, 말 더듬는 이 사람을 데려왔는데 주님께서 듣는 것은 해결해 주었는데 말을 못한다고 해 보세요. 반대로 말은 하는데 듣지를 못한다고 해봅시다. 이것은 그로 하여금 더 힘들게 만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말은 들을 수 있는데. 그 말을 듣고 자신이 표현을 못하면 어떻게 될까요? 사고 칩니다. 대체적으로 듣지 못하는 사람은 말을 못해요. 반대로, 말은 하는데 듣지를 못하면 어떻게 될까요? 그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소통이 안 되는데...내 말만 한다면 그것은 정말 안아 무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이 사람의 문제를 근원부터 완전히 해결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아멘입니까? 오늘 저와 여러분들의 죄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인생의 참된 행복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셨습니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를 제대로 만나면 인생 그 자체가 축복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찬양 가운데“구주를 생각만 해도 이렇게 좋고 커든 주 얼굴 뵈올 때에 얼마나 좋으랴.” 왜! 그렇게 좋을까요? 예수님이 문제의 해결사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 안에 있으면 행복해 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에게 어떤 문제가 있습니까? 그 문제를 어떤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하십니까? 세상이 지혜로 근원적 문제는 해결할 수 없습니다. 문제는 그대로인데 주님을 만나면 행복해 지는 법입니다. 성도 여러분! 그 분께 아뢰십시오. 그 분께 의뢰하시기를 바랍니다. 혹 이 가운데 이런 분은 안계십니까? 그런데 왜! 나는 해결해 주지 않는가?.... 문제는 하나님께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있지 않는지 돌아보십시오. 또한 내 때가 아니라 하나님의 때인지를 보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합력하여 반드시 선한일 행하신다는 사실을 깨닫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영원한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자들의 반응입니다.(36-37절) 예수님께서는 이 사람을 고쳐준 후에 당부하셨습니다. 이 일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못하게 하셨으나 그럴수록 사람들에게 더 소문을 널리 퍼뜨렸습니다. 사람들은 다 놀라 '참 광장한 일이구나! 귀머거리를 듣게 하고 벙어리를 말하게 하다니!' 그가 참으로 잘 하였다고 말하며 감탄과 칭찬을 하였습니다. 지금 우리가 이 현장에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아니 내가 귀먹고, 벙 어리었는데 예수님께서 자신을 고쳐주셨다고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하셨을 것 같으세요. 예수님 너무 감사합니다. 주일날 감사헌금 봉투에 감사헌금 몇 십 만원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하시겠어요. 귀먹고, 벙어리를 고쳤는데 그 정도로 입 싹 닦으며 안 되지요. 저는 집 팔아서 헌금하겠습니다. 굉장한 결단이네요. 그래요. 어떤 반응이라도 좋아요. 제가 16년 전에 성지순례를 여러분들의 기도와 후원에 힘입어서 다녀왔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사셨다고 하는 갈릴리 호수가, 바닷가에서 새벽 5시경에 거닐었습니다. 묵상하는 가운데 주님께서 이 바다를 오가시면서 일하셨던 것을 생각하면서, 그 자리에 지금 내가 서 있다고 하니깐! 저절로 눈물이 하염없이 제 뺨에 흘러 내렸습니다. 너무나 좋았던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16년이 지난 지금도 성지순례 이야기를 하면 그때가 생각나곤 합니다. 왜! 너무나 좋았던 경험이었기 때문입니다.

  귀먹고, 말 못했던 벙어리가 예수님을 만나 제2의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네가 이제부터 제2의 인생을 사는 것은 좋은데, 이 일을 사람들에게 말 하지 말라고 당부, 또 당부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은 그럴 수가 없어요. 더욱 더 사람들에게 자신이 고침 받은 이야기를 간증하며 예수님을 전했던 것입니다. 아멘입니까? 그래서 예수의 대한 소문이 갈릴리 전 지역에서 예수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는 가만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전하지 않고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 복음 증거 하는 일이 그의 사명이 되었던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말하기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이 복음을 전해야한다고 했던 것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 심령 가운데 가난하고, 병들고, 가엾은 사람만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병들어 어찌할 수 없어 혼자 울 힘조차 없어, 괴로워하며 울고 있는 영혼, 나 좀 어떻게 해 주세요. 나 좀 당신이 믿는 예수님께 좀 데리고 가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라고 소리쳐 외치고, 고함치며 신음 소리를 그 영혼에 소리가 들리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영적으로 몸부림치는 병든 영혼들이 저와 여러분들의 눈에 보이시기를 존귀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31.예수께서 다시 두로 지방에서 나와 시돈을 지나고 데가볼리 지방을 통과하여 갈릴리 호수에 이르시매
32.사람들이 귀 먹고 말 더듬는 자를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안수하여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33.예수께서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무리를 떠나사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고 침을 뱉어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
34.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에바다 하시니 이는 열리라는 뜻이라
35.그의 귀가 열리고 혀가 맺힌 것이 곧 풀려 말이 분명하여졌더라
36.예수께서 그들에게 경고하사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되 경고하실수록 그들이 더욱 널리 전파하니
37.사람들이 심히 놀라 이르되 그가 모든 것을 잘하였도다 못 듣는 사람도 듣게 하고 말 못하는 사람도 말하게 한다 하니라
31.それから,イエスは ツロの地方を去り,シドンを 通って,もう 一度,デカポリス地方のあたりのガリラヤ湖に 來られた.
32.人々は,耳が聞こえず,口のきけない人を連れて來て,彼の上に手を 置いてくださるように 願った.
33.そこで,イエスは,その人だけを 群衆の中から 連れ出し,その 兩耳に 指を差し入れ,それからつばきをして,その人の舌にさわられた.
34.そして,天を 見上げ,深く嘆息して,その人に「エパタ.」すなわち「開け」と言われた.
35.すると 彼の耳が開き,舌のもつれも すぐに 解け,はっきりと 話せるようになった.
36.イエスは,この ことをだれにも 言ってはならないと 命じられたが,彼らは口止めされれば されるほど,かえって 言いふらした.
37.人々は 非常に 驚いて 言った.「この方の なさったことは,みな すばらしい.つんぼを 聞こえるようにし,おしを 話せるようにしてくださった.」
Date : 2019-10-03 08:13:03    Read : 68 
 사무엘하 강해 (12) 승리케 하신 하나님
작은예수
 사무엘하 강해 (10) 약속에 초점을 맞추라.
작은예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