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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17
마8: 23-27절, / 어찌하여 무서워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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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예수
Subject     마8: 23-27절, /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성경:마8: 23-27절,    제목: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설교: 김 병철 목사, 2021년 7월 18일 (주일 낮 설교)
  
  서  론: 오늘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은혜의 말씀에 제목은“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기를 소원합니다. 이 말씀을 읽고, 듣고, 보는 가운데 성령하나님의 폭포수와 같은 은혜가 저와 여러분들의 심령 가운데 넘쳐나시기를 존귀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미국의 16대 부통령이자, 아브라함 링컨이 사망 이후에 대통령 직을 승계받은 미국의 17대 대통령 존슨은 사람을 채용할 때 남다른 기준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너무 빨리 출세한 사람과 실패를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채용을 꺼려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쉽게 출세한 사람은 독선적이기 쉬우며, 실패의 경험이 없는 사람은 남의 아픔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실패와 시련 그리고 고난은 바람과 같습니다. 바람은 배를 전복시키기도 하지만 반대로 배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고난의 실체를 정확히 알고 고난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게 하는 지혜를 발휘할 때, 오늘의 고난은 오히려 내일의 감사가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가끔 인생의 날카로운 가시에 통증을 느끼지만, 그것으로 인해 잠든 영혼이 눈을 뜨기도 한다는 사실을 잊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고난은 하나님을 가르쳐주는 학교라 할 수 있습니다. 시편119:71절은“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고 했습니다.

  본문의 배경을 잠깐 살펴봅시다. 예수님께서 많은 무리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것을 보시고 제자들에게 호수 건너편으로 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때 한 율법학자가 예수께 다가와 말했습니다.“선생님, 선생님이 가시는 곳이라면, 어디든 따라 가겠습니다.”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길“여우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인자는 머리를 둘 곳이 없구나!”본문에 기록이 없지만, 이후에 연이은 말씀이 있다면 아마도 이런 말씀이 있지 않았을까? “그래도 따를 따라가겠니! 고생을 많이 해야 할 터인데 그래도 괜찮겠니!”라고 말입니다. 질문했던 율법 학자의 대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다른 제자가 질문하기를“주님, 제가 먼저 가서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게 해 주십시오.”본문에 기록이 없지만, 이후에 연이은 말씀이 있다면 아마도 이런 말씀이 있지 않았을까?‘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따라가겠습니다.’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들에게 맡겨 두고 너는 나를 따라라.”고 했습니다. 질문했던 제자도 대답은 없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은 그들과 달랐습니다. 그들은 모든 것을 버려두고 주님을 따라 나섰던 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있는 곳에는 그들도 있었고, 예수님께서 가자고 하는 곳에는 언제든지 그들이 있었으니깐요. 예수님께서 배를 타고 계실 때에도 물론 제자들은 함께 있었습니다. 율법학자와 다른 제자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마친 후에 제자들과 함께 배를 올라타셨습니다. 그리고 갈릴리 바다 한가운데서 예수님을 태운 배와 제자들은 큰 풍랑을 만나게 됩니다. 이 내용을 살펴보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기를 소원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어도 풍랑은 찾아옵니다. (24절) 예수님의 제자 중 최소한 4명은 어부 출신입니다. 이들은 태어나면서 바다와 함께 살았던 자들이었고, 성인이 되어서는 자의든지, 타의든지는 모르겠지만 어부라는 직업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깐 이들은 바다에 대한 정보가 남다를 것입니다. 사람들보다는 바다에 친숙해져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니깐? 어부들만이 가지고 있는 남다른 무슨‘촉’이라는 것이 있었을 것입니다. 본문 24절에서 “바다에 큰 놀이 일어나 배가 물결에 덮이게 되었으되”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상상을 해 보십시오. 바다에 큰 놀이 일어났을 때,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배와 제자들에게 어떤 일들이 벌어졌을까요?

  우선 배의 크기는 어느 정도일까? 작은 배였을까? 아니면 큰 배였을까? 최소한 13명 이상을 태울 수 있는 배라고 하면 아주 큰 배도 아니었겠지만, 아주 작은 배도 아니었을 것입니다. 배의 규모가 어느 정도는 컸을 것으로 추정이 됩니다. 왜냐하면! 풍랑이 일고 있는 와중에도 예수님께서는 주무실 정도였으니 장소가 비좁으셨다면 금방 깨어나셨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주무시는 곳을 따로 마련할 정도의 크기가 아니었겠는가? 추측해 봅니다. 그렇지 않고서 풍랑으로 인하여 배에 물이 들이닥쳤을 텐데, 그러면 금방 예수님께서 깨어나셨을 것입니다. 그렇지않고 제자들이 깨울 정도였으니 조금은 규모가 있었겠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갈리리 바다 한가운데 풍랑을 만난 그 상황을 한 번 상상해 봅시다. 그러면 배 안에 있었던 사람들은 어땠을까요? 그리고 배의 상황은 어떻겠습니까? 아마도 풍랑의 수위에 따라 다를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은‘큰 놀이 일어나’고 표현합니다. 일본어 성경은‘큰 폭풍’으로 번역해 놓았습니다. 대 폭풍이 일어나면서 바닷 물결이 배 안으로 침범해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바다에 대한 경험이 없었던 상당수의 제자들은 당황했을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의 제자들중 어부 출신인 베드로를 비롯하여 안드레, 야고보, 요한이 다른 제자들을 향하여, 우리가 시키는 대로하면 아무 일도 없을 것이라 안심시켰을 것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민첩하게 행동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인간의 마음대로,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 아닙니까? 바다에서 바도가 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니까? 제자들도 콘트롤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상상히 점점 겉잡을 수 없는 상태로 바뀌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폭풍은 여느 폭풍과 다른 큰 폭풍이기에 제자들의 힘과 지식 그리고 자신들의 경험으로는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주무시고 계시는 예수님을 깨우게 된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도 인생을 살다가 고난이라는 큰 폭풍을 만나게 되면 자신의 힘과 경험 그리고 지식으로 고난을 헤쳐나가려 할 것입니다. 대체적으로 그렇게 살아갑니다. 그러나 인간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그와 같은 큰 고난을 만나게 되면 제자들처럼 예수님을 찾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실 인생에 크고, 작은 고난이 오면 언제나 그렇듯이 저와 여러분들은 주님을 의지하고 그분의 도움을 얻어 고난, 큰 폭풍(문제)을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인간은 어떤 문제가 생기면 스스로 해결하려는 자아가 발동합니다. 하나님 없이도, 나의 힘과 능력 그리고 자신의 지식과 경험으로 해쳐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앞 전의 말씀을 드린 것처럼 내게 찾아온 고난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고난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 스스로,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감당할 수 없는 고난도 있다는 사실 또한, 인정하시기를 바랍니다. 문제는 어리석은 인간은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큰 고난(문제)을 스스로 해결하려고 한다는 점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제자들과 함께 예수님께서 배 안에 계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었던 제자들이 고난을 만났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예수님과 함께 있었는데 어떻게 고난이 찾아옵니까? 적어도 그 고난이 예수님 계신 장소는 비켜 가야 하지 않을까요?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수님은 도피성, 피난처라고 말하잖아요. 그런데 그 제자들이 지금 고난을 만났고, 고난으로 인하여 심한 고생을 겪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엄청난 큰 풍랑을 만났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현재 어떤 고난을 겪고 있습니까? 그 고난이 큰 고난입니까? 아니면 내 힘으로 감당할 수 있는 고난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많은 이들이 교회를 다니면 만사형통하는 것처럼, 오해합니다. 성도 여러분! 분명히 기억하십시오. 교회를 다녀도, 예수님을 믿어도 고난은 찾아옵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들은 교회를 다니나요. 여느 종교와 다를 것이 전혀 없는데 왜! 우리가 교회를 다녀야 하는가? 질문을 참 잘하셨습니다. 분명히 말씀을 드리지만, 예수님을 믿어도, 교회를 다녀도 크고 작은 고난이 찾아옵니다. 고난은 비켜가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이 그 어떤 종교를 갖더라고 이 사실은 바뀌지 않습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부터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기독교가 다른 종교와 다른 것이 무엇입니까? 고난은 어느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찾아온다고 했지요. 그러나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떻게 다른가? 고난(문제)이 내게 찾아왔을 때에 믿는 자는, 고난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릅니다. 그 고난을 받는 자세가 믿지 않는 자와 전혀 다르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 인생은 늘 고난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닙니다. 그렇다고 그림자를 없앨 수는 없습니다. 내 뒤에 그림자는 늘 쫓아오게 마련입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고난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난이 오면 내 뒤에, 옆에 놓고, 우리는 우리 할 일, 우리가 가야 할 그 길을 가면 됩니다.

  바울 사도도 우리와 똑같이 고민이 있었습니다. 그의 눈에는 사탄의 가시가 있었습니다. 그는 그 사탄의 가시로 인하여 하나님께 세 번씩이나 간구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말씀하시기를“네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너를 자고(교만)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후에 바울 사도는 자신이 겪고 있는 고난(질병)으로 인하여 두 번 다시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달은 것이지요. 존 칼빈은 흔히 말하는 종합병원과도 같은 병약한 존재였으나 그가 병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원망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처음에야 원망과 불평을 늘어놓았는지는 모르나? 이후에 하나님 앞에서 더욱 견고한 신앙으로 거듭나면서 성경 다음으로 읽히는 고전“기독교 강요”라는 책을 무려 27살의 나이에 쓰게 됩니다. 불의 명작입니다.

  풍랑 앞에 두려워한 나머지 믿음이 흔들린 제자들입니다. (25절) 한 번 생각해 봅시다. 갈릴 바다 한가운데 저와 여러분들이 배를 타고 큰 폭풍을 만났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행동했겠습니까? 여러분들의 믿음은 어떠했을까요? 지금 코로나라는 예기치 않은 질병(바이러스로)인하여 우리들의 믿음이 송두리체 뽑히는 이런 상황속에서 죽음과 직결되는 고난이 우리에게 찾아왔다면 과연 우리들의 믿음은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까요? 지금 풍랑을 만난 제자들, 믿음이 흔들린 제자들을 향하여 누가 정죄할 수 있겠습니까?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어찌하여 그렇게 두려워하며 믿음이 없느냐? 라고 손 가락질 할 수 있겠습니까? 어쩌면 제자들의 모습은 당연한 것입니다. 이렇게 자연스럽고, 당연한 상황을 두고, 야속하게도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책망하셨습니다. 풍랑 앞에서 두려워한 제자들을 향하여, 풍랑 앞에서 여지없이 믿음이 흔들린 제자들을 향하여 주님은“어찌하여 무서워 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이 본문을 깊이 묵상해 보아야 합니다.

  이 말씀을 역으로 생각하면 믿음이 견고하면 풍랑 앞에서도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로마서 8:33-35절“33.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34.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35.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고 했습니다. 또한, 히브리서 11: 33-38절“33.그들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34.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감하게 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35.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들을 부활로 받아들이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 36.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37.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38.(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고 했습니다. 견고한 믿음은 죽음을 뛰어넘을 수 있는 것입니다.

  바울사도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로마서14:7-8절“7.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8.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그렇습니다. 견고한 믿음은 자신의 유익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유익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죽여도 다시 살리실 줄 믿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풍랑에 빠져 죽으면 주님과 함께 죽는 것을, 기쁨으로 여길 수 있다면 그것을 만족합니다. 우리가 죽는데 주님께서 가만 계시겠는가? 아니 그리하지 않으실지라도 천국에 가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손양원목사님께서 아들 동인이와 동신가 공산당에 의에 살해를 당했습니다. 그때에 손목사님의 감사한 내용은 우리들의 마음을 뜨겁게 합니다. 하나님 한 가정에 순교자 한 사람 나오는 것도 영광인데 두 사람의 순교자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두 아들을 유학 보내려고 했는데 더 좋은 천국으로 유학을 보내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 죽기를 각오하고 예수님을 믿는다면 고난, 죽음 앞에서도 담담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아멘. / 그러므로 나는 사나 죽으나...

  바람과 바다를 잔잔케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26-27절) 본문 26절“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큰 폭풍도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인생의 큰 풍랑이 무엇이 문제입니까? 예수님 앞에 나오기만 하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잔잔하게 하실 수 있는 분이라는 사실을 믿기를 바랍니다. 그분이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믿고 있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신줄 믿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렇게 위대하신 주님을 가까이 모시고 있는 제자들이 그분이 정작 누구인줄 몰랐다는 것입니다. 본문 27절“그 사람들이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이가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더라”고 한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을 믿고 교회를 10년 20년 다녔던 성도라고 하면서, 심지어 목사, 장로, 권사, 집사하는 하는 이들이 정작 그 위대하신 주님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큰 폭풍을 해결하실 수 있는 분인 줄 몰랐다는 것입니다. 아니! 목사님 그렇게 능력 많으신 분이 하나님이신데 왜! 나의 이 문제는 해결해 주지 않으실까요? 능력이 그렇게 많으신 분이 왜! 능력이 없으시다는 반증은 아닐까요? 질문을 아주 잘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능력이 없어서 해결 못하시는 것이 아니라, 능력이 있어도 해결 안 하시는 것입니다. 아니 그것은 무슨 괴변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과 나와의 문제입니다. 왜! 능력이 있으신 분께서 해결하시지 않으시는지 그것은 하나님과 나와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 문제가 해결되면 자연스럽게, 깨끗이, 완전히 해결될 줄로 믿습니다. 능력이 없으셔서 못하시는 것이 아니라, 두 가지입니다. 아직 때가 되지 않아서든지, 아니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하나님의 나 사이에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그 무엇이, 있기 때문입니다. 결단하십시오. 그러면 해결됩니다.

   여러분들은 잘사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어느 의사가 잘사는 것이 대해서 의학적으로, 생리적으로 잘 표현했습니다. 첫째, 잘 먹는 자. 둘째, 잘 싸는 자. 셋째, 잘 자는 자. 넷째, 잘(즐기는) 노는 자. 다섯째,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 현재 나의 직업 전선에서 일을 잘하는 자, 독보적인 존재가 되어야 잘 사는 자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로써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 분께 기쁨을 도리는 독보적인 존재를 말하는 것입니다. 인생의 1등을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그리스도의 향기를 낸다면 그 사람은 인생을 잘 사는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교회를 다녀도, 예수님을 믿어도 고난이 찾아온다고 했잖아요. 그렇다면 왜! 우리들은 교회를 다니나요. 여느 종교와 다를 것이 전혀 없는데 왜! 우리가 교회를 다녀야 하는가? 기독교와 다른 종교와 무엇이 다른가? 여러분들이 왜! 예수님을 믿어야 하는지에 대해 설명하겠습니다. 교회를 다니면서도 정작 예수님을 몰라요. 너무나 안타까운 것입니다. 다른 종교에서는 절대로 찾을 수 없는 영원의 문제, 영생의 문제, 죄의 문제, 죽음의 문제를 예수님을 해결해 주십니다. 어느 종교에서 죽음에 문제를 해결하는지 가져와 보십시오. 어떤 종교에서도 이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기독교만이 예수님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혹시 이렇게 질문하시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목사님! 내가 그럴 줄 알았습니다. 내가 그래서 기독교를 싫어하는 겁니다. 기독교는 너무나 편협되어 있어요. 다른 종교도 인정하면 어디 덧납니까? 그러면 제가 다시 여러분들에게 묻습니다. 다른 종교에 구원이 있다. 영생의 문제, 죄의 문제, 죽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종교가 있으면 그 증거를 가지고 오세요. 그러면 인정해 드리겠습니다. 가지고 오십시오.

  불교는 엄밀히 말하면 종교가 아닙니다. 종교의 3대 요소가 있습니다. 신도, 경전, 신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불교는 앞에 두 가지는 있어요. 그런데 신이 없어요. 석가도 자신을 신이라고 말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그리고 불자들이 고행을 통해서 신이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석가도 스스로 신이라 자청하지도 않았는데, 후대 사람들이 신이 될 수도 있다. 신이 된 사람이 있으면 말해 보세요.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이슬람 종교에서 하나님께서 마호멧을 보낸 적이 없어요. 성경 어디에도 이슬람은 사람이 만든 종교입니다.  흔히 말하는 다원주의 종교를 주장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고 인정해 주자는 주장입니다. 이들의 주장이 바로 인간 스스로가 신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개가 열심히 수행하면 호랑이로 바뀔 수 있습니까? 비둘기가 열심히 하늘과 땅을 수천 번 올라갔다가 내려갔다가 노력하면 비둘기가 독수리가 될 수 있는 것입니까? 인간이 수행과 고행을 통해서 노력하고 또 노력하면 신이 될 수 있답니까? 인간은 인간일 뿐입니다. 인간이 스스로 신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사탄의 생각입니다. 아담과 하와에게 뱀이 찾아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실과를 따 먹는 날에는 네 눈이 밝아져 네가 신이 될 수 있다고 유혹한 것이 아닙니까? 그때 하와가 자기 자신 신이 되겠다고 그 열매를 따 먹고, 아담에게도 함께 신이 되겠다고 따 먹은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오직 예수님 외에는 구원을 주신 일이 없습니다. 사도행전 4:12절“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고 했습니다. 기독교, 아니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에게 영생, 구원,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 있는 유일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아니 교회를 그렇게 오랫동안 다니면서도 예수님을 모르십니까? 그토록 오랫동안 기적과 능력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제자들은 말합니다. 27절에“그 사람들이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이가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더라.”고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바람과 바다를 순종케 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저와 여러분과 같은 더러운 죄인을 구원하는 것이, 더 어려운 일입니다. (옆 사람과 이렇게 이야기 해 보십시오. 오 당신 같은 분이 예수님을 믿다니 기적입니다. 기적) 믿습니까?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믿기를 바랍니다. 아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교회를 다녀도, 예수님을 믿어도 고난은 찾아옵니다. 그러나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그 고난을 받는 자세가 다른 것입니다. 크고 작은 고난이 찾아 온다 할지라도 우리는 예수님을 찾아야 합니다. 고난이 찾아올 때 흔들리는 믿음, 두려워하는 마음, 무서워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기를 각오한, 견고한 믿음을 갖고 고난을 뛰어넘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주님이 누구인줄 몰랐습니다. 엠마오로 내려가던 제자들처럼 주님이 누구인줄 몰랐습니다. 여러분들은 예수님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믿고 있습니까? 오늘 주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묻습니다.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견고한 믿음을 갖고 당신을 따라오기를 기대하고 있으십니다. 아멘

23.배에 오르시매 제자들이 따랐더니 24.바다에 큰 놀이 일어나 배가 물결에 덮이게 되었으되 예수께서는 주무시는지라 25.그 제자들이 나아와 깨우며 이르되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26.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27.그 사람들이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이가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더라
23.イエスが 舟にお乘りになると,弟子たちも 從った.
24.すると,見よ,湖に 大暴風が 起こって,舟は 大波をかぶった.ところが,イエスは 眠っておられた.
25.弟子たちはイエスのみもとに來て,イエスを起こして言った.「主よ.助けてください.私たちはおぼれそうです.」
26.イエスは言われた.「なぜこわがるのか,信仰の薄い者たちだ.」それから,起き上がって,風と湖をしかりつけられると,大なぎになった.
27.人々は驚いてこう言った.「風や湖までが 言うことをきくとは,いったい この方はどういう 方なのだろう.」
Date : 2021-07-17 17:42:26    Read : 50 
 주일 설교 동영상 (유투브에 들어가셔서 동경성산교회 치시면 주일설교를 보실수 있습니다. )
작은예수
 마태복음 18:15-35절, 제목: 어느 길을 선택할 것인가?
작은예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