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고이와성산교회
 
 
 
2019/04/22
예수님의 행저 (30) / 십자가의 영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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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예수
Subject     예수님의 행적(28) / 죽기를 각오한 제자들
성경: 마26:69-75절,        제목: 죽기를 각오한 제자들
설교: 김 병철 목사, 일시:2019년 4월 7일(주일 낮 설교)

  오늘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은혜의 말씀에 제목은“죽기를 각오한 제자들”이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기를 소원합니다. 이 말씀을 읽고 듣고 보는 가운데 성령 하나님의 폭포수와 같은 은혜가 저와 여러분들 심령 가운데 넘쳐나시기를 존귀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본문 내용은 사복음서 동시에 언급된 말씀입니다. 자주, 많이 언급되었다는 말은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를 반증하는 것입니다. 본문 내용은 베드로 사도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한 내용입니다. 이 내용을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면서 은혜를 나누기를 소원합니다.

  성경의 예언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예수님을 생각해 봅시다. (31-35절) 예수님을 배신할 제자들을 지켜보신 주님의 마음은 과연 어떻하셨을까? 베다니의 식사초대를 받으셨던 주님은 자신 앞에 마리아가 값비싼 향유를 주님의 머리와 발에 부었을 때, 제자들은 여인을 책망했습니다. 왜! 이 귀한 것을 낭비, 허비하냐고 했지요. 유독 여인 편에 서서 그를 칭찬하신 분은 다른 분이 아닌 바로 예수님이셨습니다. 그 이후에 예수님의 행동에 언짢았던 가룟유다는 은30에 에수님을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에게 넘기려고 계획을 세웠다고 했습니다. 다른 성경에서는 가룟 유다의 마음에 사탄이 예수님을 팔 생각을 집어넣었다고 했습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예수님은 정말 가슴이 아팠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자기를 배반할 줄 알고 계신 예수님께서 제자들 앞에서 성경에 기록된 예언 된 말씀 한다는 것 그 자체가 예수님으로서는 정말 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예언의 말씀이 언제, 어느 성경에 기록하고 있고, 어느 구절에 나옵니까? 구약성경 스가랴서입니다. 스가랴서는 예수님께서 출생하시기 무려 700년 전에 예언한 말씀입니다. 스가랴13:7절“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칼아 깨어서 내 목자, 내 짝 된 자를 치라 목자를 치면 양이 흩어지려니와 작은 자들 위에는 내가 내 손을 드리우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니깐 베드로와 예수님의 제자들이 주님을 부인하기 앞서 미리 예언된 말씀이 무려 700년 전에 예언되어 있었고, 그 내용이 오늘 본문 31-35절에 성취되기 위해 기록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31-35절의 내용을 한번 생각해 봅시다. 그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오늘 밤 너희는 모두 나를 버릴 것이다. 성경에도 내가 목자를 칠 것이니 양 떼가 흩어질 것이다.라고 쓰여 있다. 그러나 내가 다시 살아나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겠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말하기를 "모든 사람이 다 주님을 버린다 해도 저는 절대로 주님을 버리지 않겠습니다" 하자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내가 분명히 너에게 말하지만 바로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말할 것이다" 하셨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내가 주님과 함께 죽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로 주님을 모른다고 하지는 않겠습니다." 하고 장담하였습니다. 그리고 다른 제자들도 다 그렇게 고백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호언장담을 듣고는 얼마나 가슴이 아파했을까?

  여기에서 베드로가 호언장담했던 부분을 사복음서 별로 찾아봅시다. 이 부분에서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씩이 부인했다고 베드로 사도에게만 돌을 던지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은 제자들 모두가 예수님께 고백하기를‘죽기까지 주님과 함께 하겠다고 약속했고, 함께 부인을 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그러면 왜! 성경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씩이 부인했다는 사실만을 기록하고 있습니까? 라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베드로 사도가 제자들의 대표성을 띠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을 이해하셔야 사복음서의 제자들의 현재 신앙을 볼 수 있게 됩니다. 대부분 성경에서 제자들의 신앙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베드로가 앞장서서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흔히 대표성을 띠고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베드로 사도가 예수님을 향한 사랑하는 마음, 존경하는 마음이 그대로 담겨져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이 주님 앞에서 진짜로 죽기를 각오했던 것입니다. 거짓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이 장면은 베드로의 고백과 함께 제자들의 고백입니다.

  마태복음에서는“33.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 35.베드로가 이르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그와 같이 말하니라.”마가복음에서는 14장“29.베드로가 여짜오되 다 버릴지라도 나는 그리하지 않겠나이다 31.베드로가 힘있게(힘주어) 말하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이와 같이 말하니라”누가복음에서는 22장“33.그가 말하되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에도 가기를 각오하였나이다.”요한복음에서는 13장“37.주를 위하여 내가 목숨을 버리겠나이다.”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베드로의 고백이었고, 제자들 모두의 고백이었음을 우리는 인정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동경성산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들도 제자들처럼 처음 예수님을 믿고 은혜받았을 때, 이렇게 고백하지 않았습니까? 주님! 주님을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라 할지라도 감당하겠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나를 써 주소서! 아멘! 이십니까? 오늘 오후 예배는 여 선교회 헌신예배로 드립니다. 함께 동참하셔서 큰 은혜를 받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라고, 우리들의 믿음을 재점검하고 다시 한번 주님 앞에서 헌신과 결단하는 시간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이토록 주님을 위해서 죽기를 각오했던 제자들은 왜! 도망쳤을까? 대표적으로 베드로가 주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했다고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주님을 위해 죽기를 각오했던 그들이 하루아침에 추풍낙엽처럼 힘없이, 신앙이 떨어져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하며 도망을 쳤을까요? 그 원인이 과연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지난 시간에 말씀을 드렸던 것처럼 ⓵겟세마네 동산에서 제자들은‘주님께서 깨어 기도하라.’고 명령했음에도 불구하고 기도하지 않고, 쿨쿨 잠들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제자들이 피곤하여서 잠들었다는 말입니다. 영적으로 볼 때, 영적인 잠이 들었다고 지난 시간에 말씀을 드렸습니다. 또한, 성경에 보면⓶“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연약하여”라는 구절이 있지요. 제자들이 신이 아닌 이상 버틸 힘이 없었던 것입니다. 인간이기에 육신의 몸은 한계가 있잖아요. 그래서 그들은 졸고, 깨어있지 못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⓷베드로가 멀찍이 주님을 따라갔다고 했습니다. 가까이 주니을 쫓아간 것이 아닙니다. 멀찍이...주님과 베드로의 사이, 간격이 넓어졌다는 말씀입니다. 그 사이에 사탄이 장난을 치게된 것입니다. ⓸제자들은 예수님을 사랑했고, 존경했으며, 그분과 함께 있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대중 앞과 군사들 앞, 그리고 빌라도, 제사장, 바리새인들에게 잡히면 예수님처럼 감옥에 들어가든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수 있다는 두려움이 제자들 마음속 깊이 스며들어왔던 것입니다. 결국, 제자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주님을 부인하고 도망쳤다는 것입니다. ⓹마지막은 그들이 성령의 사로잡혀 있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성령 충만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에서 볼 때, 제자들이 성령의 충만함으로 인하여 죽음을 극복했고,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담대하므로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도들로 거듭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제자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입지 못했기 때문에 부인하고 도망쳤던 것입니다.

  죄의 파급효과란 무엇일까? (70-74절) 인생을 살면서 죄를 짓지 않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모든 사람이 물 먹듯 죄를 짓고 살아갑니다. 성경에 보면‘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으니’라고 했습니다. 누가 누구를 정죄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죄의 파급효과란 엄청나다는 것입니다. 죄란 점진적으로 더 크게 확산되어 간다는 점입니다. 죄는 인간의 감성을 무디게 만듭니다. 한번 죄를 범하고 나면 죄의 확산성이 점점 더욱 커진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마치 누룩처럼 말입니다. 마태복음에서 베드로 사도가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 그런데 그 죄의 강도가 점점 심화 된 것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70절 “베드로가 모든 사람 앞에서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겠노라.”고 했고, 72절 “베드로가 맹세하고 또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더라.”고 했으며, 74절 “그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이르되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곧 닭이 울더라.”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모든 사람 앞에서 부인했고, 그다음은 모든 사람 앞에서 맹세하고 부인하며, 그다음은 모든 사람 앞에서 저주하고 맹세하여 부인했던 것을 발견합니다. 이처럼 죄란 점점 확산성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옛말에 이런 속담이 있지요. “바늘 도둑이 소도둑이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히브리서 12:4-9절 말씀에 보면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했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고, 그러말미아 주의 징계하심을 받게 되었다고 경고합니다. 이 말은 결국 그리스도인들이 ‘죄와 싸울 때, 피 흘리기까지 싸우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왜! 죄와 싸울 때에 피 흘리기까지 싸워야 하는가? 그것은 죄의 속성이 바로 점점 확산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누룩처럼 나의 삶의 번져 나아가아가 결국 우리의 평화로운 삶, 사명으로 살아야 할 삶을 망가트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예를 든다면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경홀히 여기고, 하나님과의 약속을 일방적으로 한 번 깨뜨림으로 말미암아 평온한 삶이 파괴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⓵자신의 수치를 보게 되었고, ⓶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졌으며, ⓷노동을 하므로 인하여 이마에 땀을 흘려야 했으며, ⓸여인들은 해산의 고통을 겪게 되었고, ⓹일생동안 남편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축복의 장소인 ⓺에덴에서 쫓겨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⓻아담과 하와는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는 존재였지만, 한 번의 죄로 말미암아 영생할 수 없는 존재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아니 한 번 약속을 어겼다고 이렇게 과도한 체벌이 어디에 있다는 말입니까? 이것이 죄 성의 무서움입니다. 성도 여러분! 주일 한번 범하는 것은 별거 아닌 것 같지만, 그것이 결국 우리들의 삶을 엄청나게 파괴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한 번 죄를 짓게 되면 두 번, 세 번..죄의 면역력이 생기고 결국은 무디어져서 죄가 죄인 줄도 모르고 살아가게 되며, 결국은 죄악이 우리의 삶을 삼켜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는 어떤 역할을 하시는가? (75절) 사실 그리스도인들은 상당히 수동적일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마치 그리스도인들을 로버트처럼 만드셔서 하나님의 뜻을 생각할 필요도 없이 그냥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도록 세팅해 놓으셨으면 좋았을걸! 아예! 우리가 죄를 짓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비인격체로 만드셨으면 되지 않았나요? 뭐하러 우리들에게 자유의지를 주셔서 인간 스스로 죄를 짓게 하시고, 그 죄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징계를 하시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고 말하는 성도들을 간혹가다 만나게 됩니다. 물론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는 편하실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요사이 현대문명이 발달하여서 독거 노인분들을 위해 로버트를 이용한다고 합니다. 혼자 집에 있는 것이 적적하다고 해서 로버트를 가정에 둔다고 합니다. 그러면 프로그램 설정에 의해서 사람이 묻는 말에 로버트가 대답을 하니 심심하지 않고, 하루를 살아갈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관계가 형성이 될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인격체이시기 때문에 인격과 인격의 만남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주님과 소통하고 은혜를 나누시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자발적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것을 원하시지 기계적으로 움직이시는 것을 원하시지 않으십니다. 왜요! 인격적이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성령 하나님께서 어떤 역할을 하실까? 성령 하나님은 엄청난 능력으로 우리를 사로잡을 수 있으신 분이십니다. 그분의 능력은 엄청나서 인간이 죄를 지었던 부분도 성령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면 단번에 자신의 죄를 통곡하게 만드는 능력이 있으십니다. 그러면 어떻게 일을 하실까? 성경에 보면 요한복음 14:26절을 보면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고 하셨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면 성령님께서는 생각나게 하시고, 깨닫게 하시는 역할을 하십니다. 본문 75절을“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고 했지요.

  설령 인간이, 제자들의 죄 성으로 인하여 주님을 부인했다 할지라도, 성령 하나님께서는 제자들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십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돌이킨 후에 형제들을 굳게 하게 하기 위해서라는 말씀이 성경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역할입니다. 누가복음 22:32절“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 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고 했습니다. 때로는 인간이 죄를 짓기도 하고, 인간적으로 볼 때 믿는 사람이 뭐 저래! 저런 모습은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수 있나? 예수 믿는 사람들이 아니야? 라며 사람들에게 손 가락질 받는 경우가 있다손 치더라도 성령 하나님께서 그들을 변화시키시고, 감화, 감동, 회개시켜서 네 형제, 자매들을 굳게 하는 일에 쓰임 받도록 하는 것이 성령님의 역할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약한 부분을 주님께 아룁시다. 그리고 성령님의 도움을 구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나를 불쌍히 여기시고 나를 사용해 주옵소서. 마치 제자들처럼 주님을 부인하고, 모른다고 외쳤지만, 결국 성령님께서는 그들을 쓰셔서 형제들을 굳게 하는데 사용하셨던 것처럼 우리들도 사용하소서....아멘입니까? 기도하겠습니다.

69.베드로가 바깥 뜰에 앉았더니 한 여종이 나아와 이르되 너도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거늘 70.베드로가 모든 사람 앞에서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겠노라 하며 71.앞문까지 나아가니 다른 여종이 그를 보고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되 이 사람은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매 72.베드로가 맹세하고 또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더라 73.조금 후에 곁에 섰던 사람들이 나아와 베드로에게 이르되 너도 진실로 그 도당이라 네 말소리가 너를 표명한다 하거늘 74.그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이르되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곧 닭이 울더라 75.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69.ペテロが 外の中庭にすわっていると,女中のひとりが 來て言った.「あなたも,ガリラヤ人イエスといっしょにいましたね.」 70.しかし,ペテロはみなの前でそれを 打ち消して,「何を 言っているのか,私にはわからない.」と 言った 71.そして,ペテロが 入口まで 出て行くと,ほかの女中が,彼を 見て,そこにいる 人々に 言った. 「この 人は ナザレ人イエスといっしょでした.」 72.それで,ペテロは,またもそれを 打ち 消し,誓って,「そんな 人は知らない.」と 言った.73.しばらくすると,そのあたりに 立っている人々が ペテロに近寄って 來て,「確かに,あなたもあの仲間だ.ことばのなまりではっきりわかる.」と 言った.74.すると 彼は,「そんな 人は知らない.」と 言って,のろいをかけて 誓い始めた.するとすぐに,鷄が 鳴いた.75.そこで ペテロは,「鷄が鳴く前に 三度,あなたは,わたしを 知らないと言います.」と イエスの 言われたあのことばを 思い 出した.そうして,彼は 出て行って,激しく 泣いた.
Date : 2019-04-13 14:14:03    Read : 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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