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고이와성산교회
 
 
 
2019/11/12
마태복음 18:15-35절, 제목: 어느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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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예수
Subject     사무엘하 강해 (13) 영향력 있는 인생
성경: 삼하9:1-13절,             제목: 영향력 있는 인생
설교:김 병철 목사, 일시:2019년 10월 13일(주일 날 설교)
  서  론: 오늘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은혜의 말씀에 제목은“영향력 있는 인생”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기를 소원합니다. 이 말씀을 읽고 듣고 보는 가운데 성령 하나님의 폭포수와 같은 은혜가 저와 여러분들 심령 가운데 넘쳐나시기를 존귀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부자 3대를 못 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유일하게 300년 부를 누린 가문이 있으니 그 집안이 바로‘경주 최부잣집’입니다. 경주 최부잣집은 1600년대 초반에서 1900년 중반까지 무려 300년 동안 12대에 걸쳐 부를 누렸지만 나라가 망하자 마지막 최부자 최준(1884∼1970)은 재산을 정리하여 상해임시정부에 나라를 되찾는데 쓰라며 독립군자금으로 보냈다. 광복 후에는 인재양성을 위해 남은 전 재산을 영남대학교의 전신인 ‘청구대’와 ‘대구대학’ 설립에 쏟아 부은 후 스스로 역사의 무대 뒤로 사라졌습니다. 지금은 집도 후손들의 소유가 아닌 영남 대에서 관리하고 있습니다. 비록 만석 재산은 사라졌지만 그들이 남긴 한국적‘노블레스 오블리주’정신이란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뜻하는 말이다”다시 말하면 가진 자가 없고, 헐벗은 자의 대한 책임은 다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것을 실천한 집이 최부잣집입니다.

  그렇다면 경주 최부자 가문이 300년 넘게 부를 지켜올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그 비밀은 최부잣집 가문이 지켜 온‘여섯 가지 가훈(六訓)’에 있습니다. 첫째,“절대 진사 이상의 벼슬을 하지 말라.” 품위 유지를 위해 제일 낮은 벼슬인 진사 벼슬은 반드시 해야 하지만 절대 그 이상의 벼슬은 탐하지 말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높은 벼슬에 오르면 정쟁에 휘말려 집안이 화를 당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둘째,“재산은 1년에 절대로 1만석 이상을 모으지 말라.”왜냐하면 지나친 욕심은 반드시 화를 부르기 때문이다. 1만석 이상의 재산은 이웃과 소작농들에게 나누어줬으며, 최부자는 12대에 걸쳐 이 가훈을 철저히 지켰다. 셋째,“나그네를 후하게 대접하라.”누가 와도 넉넉히 대접하여 하룻밤 잠자리까지 마련해 준 후 보냈다. 예나 지금이나 정보를 장악하는 자가 세상을 지배한다. 최부자는 나그네들에게 작은 베풂으로 가만히 앉아서 1천리 밖의 소식을 접한 것이다. 넷째,“흉년에는 남의 논, 밭을 사지 말라.”흉년 때 먹을 것이 없어서 남들이 싼 값에 내 놓은 논밭을 사면 손쉽게 재산을 늘릴 수는 있지만, 그들을 원통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상대의 원과 한이 서린 재산은 싼 값에 취득한 것만큼 원성의 대상이 될 수 있으며, 정당한 방법으로 부를 축적할 때만이 기치가 있는 것이다.

  다섯째,“가문의 며느리들이 시집오면 3년 동안 낡은 무명옷을 입혀라.”며느리는 말 그대로 새 식구이자 안주인이다. 바꾸어 말하면 며느리가 잘못하면 그 집안이 망하는 건 시간문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내가 어려움을 알아야 다른 사람의 고통을 헤아릴 수 있다. 3년간의 이 같은 과정을 통해 진정한 최부자의 안주인으로 거듭나게 하는 지혜가 숨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여섯째,“흉년에는 양식을 풀어 사방 100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지금도 최부잣집 안채 마루에는 쌀뒤주가 놓여 있는데 그 뒤주는 자신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가난한 이웃을 위한 것으로 1년 365일 항상 대문 밖에 내놓았다. 누구든 필요한 만큼 퍼가라는 의미도 있었지만, 그 이면에는 양식을 구하려 온 자들의 자존심을 지켜주기 위한 배려가 숨어 있었습니다. 이 같은 철저한 배려와 나눔은 구한말 굶주린 백성들이 도적떼로 변해 스스로를 의적이라고 부르며 조선 8도의 부잣집을 약탈하는 등 부자들이 수난을 겪을 때 오히려 최부잣집은 그들이 호위하며 지켜주었다고 합니다. 최부자 가문의 마지막 부자였던 최준의 결단은 또 하나의 인생 사표(師表)입니다. 못다 푼 신학문의 열망으로 영남대학의 전신인 대구대와 청구대를 세웠고, 백산상회를 세워 일제시대에 독립자금을 지원했던 그는 노스님에게서 받은 금언(재물은 분뇨(똥)와 같아서 한 곳에 모아 두면 악취가 나 견딜 수 없지만, 골고루 사방에 흩뿌리면 거름이 되는 법이다)을 평생 잊지 않고 실천에 옮겼습니다. 모두가 가슴에 새기고, 실천해야 할 진리의 말씀이 아니겠는가? 지금 위에서 설명했던 모든 것은 성경 기본적인 가르침입니다.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그 사람에게 은총을 베풀리라. (1절) 본문을 보면 멸망했던 사울의 가문이 요나단으로 인하여 다시 가문이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요나단은 사울의 가문에 축복의 통로가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날 저와 여러분들을 통하여 우리의 가문이 일어나기를 바라고, 저와 여러분들을 통해서 자녀들의 앞길이 열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한 가문이 어떤 계기를 통해서 흥하기도 하고, 망하기도 하는 일이 비일비재 일어납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로 인하여 가정이, 자녀들이, 사업이 흥해지는 역사가 나타나기를 축복합니다. 그렇다면 다윗은 왜!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사울의 가문에 남은 자에게 은총을 베풀려 했을까요? 여기서는 우리는 다윗과 요나단의 관계를 깊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윗과 요나단의 관계를 어떤 관계였을까요?  

  요나단이 다윗의 대한 애 뜻한 마음을 엿 볼 수 있는 구절이 여러 군데 등장합니다.
사무엘상 18:1-5절 요나단은 다윗을 자신의 생명처럼 여겼다고 했습니다.
사무엘상 19:1-7절 사울 왕 앞에서 다윗을 변호하는 요나단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생명을 구하려 애쓰는 요나단을 볼 수 있습니다.
사무엘상 20:1-23절 다윗의 생명을 구해주는 요나단입니다. 특히 4절“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 마음의 소원이 무엇이든지 내가 너를 위하여 그것을 이루리라.”감동적인 구절 아닙니까? 17절“요나단이 다윗을 사랑하므로 그로 다시 맹세케 하였으니 이는 자기 생명을 사랑함같이 그를 사랑함이었더라.”고 했습니다. 위대한 사랑.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다윗이 요나단을 어떻게 생각했는지가 잘 표현된 곳이 있습니다. 한번 찾아봅시다.

사무엘하 1: 17-27절 요나단을 위해 활의 노래라는 시를 지어서 야살에 책에 기록하고, 유다 사람들에게 그들의 용맹스러움을 가르치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요나단을 향하여 이렇게 고백합니다. 26절“내 형 요나단이여 내가 그대를 애통함은 그대는 내게 심히 아름다움이라 그대가 나를 사랑함이 기이하여 여인의 사랑보다 승하였도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다윗은 요나단을‘내 형’이라고 말합니다. 또한‘내가 그대를 애통함은’요나단으로 인하여 가슴이 미어진다. 너무나 슬퍼하는 이유는 그가 나를 심히 사랑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자신의 목숨을 걸고 다윗을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삼상 19:4,17절“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 마음의 소원이 무엇이든지 내가 너를 위하여 그것을 이루리라.”,“요나단이 다윗을 사랑하므로 그로 다시 맹세케 하였으니 이는 자기 생명을 사랑함같이 그를 사랑함이었더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내용을 보면 다윗이 얼마나 요나단에게 신세를 졌고, 요나단에게 사랑받았는지 알 수가 있었으며, 다윗 또한 요나단을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다윗이 왜!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사울의 가문에 살아남은 자를 구지 찾아서 은총을 베풀려고 했는지 그 이유를 아시겠지요. 다윗은 요나단으로 인하여 분에 넘치도록 사랑을 받았기에 이 은혜를, 그 사랑을 어떻게 해서라도 보답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다윗은 지금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요나단이 아니고서는 그가 왕이 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요나단으로 하여금 다윗을 돕도록 하셨기 때문에 다윗이 왕이 되었지만, 구체적으로 생각해보면 요나단의 역할이 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조금이라도 받은 그 은혜와 그 사랑을 갚기를 원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들도 다윗 못지않게 예수 그리스도께 받은 사랑을 생각해 보면 이루 말할 수 없는 축복과 은혜와 사랑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고, 죽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성경은 말씀하시기를‘우리가 위대한 사람일 때 예수님께서 사랑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대단한 존재이었을 때에 사랑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죄인이었을 때,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마른 막대기보다도 못한, 별 볼일 없었던 나를, 예수님께서 사랑하셔서 직접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무덤에서 삼일 만에 부활하셔서 우리를 위해 처소를 예배하러 천국에 올라가셨다가 다시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재림하시겠다는 약속 분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믿습니까? 이것이 복음입니다. 이것이 굿 뉴스입니다. 이것이 저와 여러분들의 희망인 것입니다. 아멘입니까? 저와 여러분들은 주님으로부터 이 넘치는 사랑, 갚을 수 없는 그 큰 사랑을 받았던 것입니다. 받은 그 사랑을 바로 네 곁에 있는 형제, 자매, 연약하는 이들,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이웃들에게, 믿음의 동역자들에게 나누워 주고, 섬기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면 영향력 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삼하9:1절) 다윗의 이스라엘 왕이 되어 첫 번째 공식적인 사역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하나님의 궤를 다윗 성으로 모셔오는 사업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궤를 다윗의 성으로 모셔오는데 우여곡절이 많았지요. 처음에는 부푼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웃사가 거룩한 하나님의 궤를 죄인의 손으로 만지므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충돌하여서 그 자리에서 죽게 되었지요. 이후에 하나님의 궤가 다윗 성이 아닌 오벧에돔의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약 3개월간 머무는 동안에 하나님께서 그 가정에 복에 복을 더하여 주셨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다윗은 다시 용기 내서 하나님의 궤, 언약궤를 하나님의 방법으로 모셔오는데 성공합니다. 이 말은 다윗이 하나님의 궤를 다윗 성으로 모셔 들어왔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왕이 다윗 자신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왕 되심을 고백하는 중요한 장면인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의 인생의 왕이 누구십니까? 여러분의 가정의 주인은 누구이십니까? 사실 신앙의 첫 출발점은 여기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나의 주인, 나의 왕은 누구인가? 내 삶의 주인이 과연 누구인가? 이 개념부터 바르게 설정해야 올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냥 종교생활을 하게 되는 것이지요. 여러분께 다시 묻습니다. 여러분의 신앙생활하십니까? 아니면 종교생활을 하십니까? 당신의 왕, 당신의 주인은 누구십니까?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을 이스라엘 왕으로 모시고 난 이후에 하나님께서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어느 곳에 머물든지 그로 하여금 이기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다윗은 주변의 족속들과 싸움을 시작합니다. 블레셋을 중심으로 아말렉, 암몬, 모압, 아람, 에돔까지 모두 다 싸워 연전연승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친히 자신의 백성과 자기 나라를 위해 친히 싸우셨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대단히 중요한 말씀입니다. 지난주에 말씀 드렸던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어디를 가든지 이기게 하셨다고 하셨지요. 다윗은 주변국들과 싸워 이긴 정도가 아니라 그들의 땅을 차지하고, 조공을 바치게 하므로 나라는 부강하게 되었고, 다윗의 명성은 온 주변 국에 사람들에게는 두려움에 대상이 되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이 있다면 다윗이 이기는 곳 마다, 당시에 가장 귀한 은, 금을 여호와께 바쳤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영광을 홀로 받으셔야 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나라의 주인인과 전쟁에 공로자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당신이 이스라엘의 왕이심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사방 주변 국가들로부터의 위협에서 안정을 찾게 되었습니다. 이후에 다윗은 자신에게 은혜를 베풀 주었던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사울의 가문에 남아있는 자들을 찾아 은총을 베풀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정치적으로 자신에게 위협이 될 만한 종족은 그 씨를 말리는 것이 일반적 상식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신이 요나단으로 인하여 받은 그 사랑을 잊지 않고 오히려 그 사울의 가문에 남아 있는 자를 찾아서 은총을 베풀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마음에 여유가 있고,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는 이렇게 영향력 있는 삶, 타인에게 은혜를 베풀고, 주는 삶을 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다윗도 사울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왕국만을 고집하려고 했다면 사울과 같은 인생으로 마감을 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자신의 왕국이 아닌 하나님을 높이고 세웠더니 하나님께서 다윗을 높이고 세워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을 어디서 많이 들었던 것 같지 않습니까? 다윗이 하나님을 위해 성전을 짓겠다고 했을 때, 하나님께서 다윗의 마음만을 받으시고 그를 어떻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까? 삼하7:8-9절“그러므로 이제 내 종 다윗에게 이와 같이 말하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①내가 너를 목장 곧 양을 따르는 데에서 데려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고 ②네가 가는 모든 곳에서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원수를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③땅에서 위대한 자들의 이름 같이 네 이름을 위대하게 만들어 주리라.”이것이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약속하셨던 말씀입니다. 다시 말하면 영향력 있는 존재로 만들어 주겠다는 말씀입니다. 아멘입니까? (지금까지도 다윗은 이스라엘 후손들에게 영웅입니다. 다윗별 이야기)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만나는 다윗입니다. (5-8절) 다윗이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기다리면서 얼마나 마음이 쿵덕쿵덕했을까요? 다윗을 만나러 한번 가봅시다. 저는 그 마음을 묵상하면서 느껴졌습니다. 사랑했던 동역자의 아들을 만난다는 것은 곧 그를 만나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을 것입니다. 다윗은 사람을 보내어 사울의 손자이며 요나단의 아들인 므비보셋을 데려왔습니다. 그가 두려워하며 다윗에게 나아와 정중하게 절할 때에 다윗이 그에게 말하였습니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너의 아버지 요나단을 생각하여 너에게 은혜를 베풀려고 너를 불렀다. 내가 너의 할아버지 사울이 소유했던 땅을 모두 너에게 돌려주고 또 내가 너를 항상 내 식탁에서 먹도록 하겠다.' 그때 므비보셋이 왕 앞에 다시 절하며 말하였습니다. '이 종이 무엇인데 대왕께서 죽은 개와 같은 저에게 이런 친절을 베푸십니까?'라고 했던 것입니다. 다윗은 이 말을 들으면서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요? 민족의 비극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런 비극이 왜! 벌어졌습니까? 자기왕국을 세우려다 그렇게 된 것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어쩌면 므비보셋은 다윗이 은총을 베푼다고 해놓고 원수들을 찾아서 다 죽이려고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다윗 앞에 나아갈 때, 정말 두렵고 떨렸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스스로 자기를 낮추어 죽은 개 같은 존재라 말했던 것입니다.

  다윗은 이렇게 말합니다. 시바를 불러놓고 사울의 토지를 므비보셋에게 다 주었으니 너희종들과 자녀들은 므비보셋을 위해 밭을 갈고, 그를 공궤하라고 명령합니다. 그러나 므비보셋은 왕자들처럼 내 상에서 식사를 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므비보셋을 다윗은 자식처럼 생각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깐 왕자들과 같이 식사를 매일 같이 하겠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그를 양자라는 말은 없지만, 자기 양자로 받아 드리겠다는 표현입니다. 다윗이 므비보셋을 보면서 다윗은 얼마나 가슴이 벅찼을까요? 가슴이 쿵덕쿵덕 뛰었을 것입니다. 므비보셋은 분명 요나단을 닮았을 것이고, 다윗은 그 형 요나단을 보듯이 기뻤기 때문에 늘 식사 자리에 함께 하기를 원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았을까요?  

  한편으로 므비보셋은 죽은 개 같은 존재라고 스스로를 표현을 했습니다. 어쩌면 이 표현이 정확한 표현인지도 모릅니다. 오늘 날 저와 여러분들도 이 므비보셋의 고백과 같이 죽은 개는 아니었는지요. 죽은 개는 아무짝에도 쓸 못이 없는 존재라는 말입니다. 죽은 사자보다 살아있는 강아지가 더 낫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니깐 죽은 것은 아무 쓸 못이 없다는 말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이미 죽었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제 2의 인생을 살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죽을 수밖에 없었던 존재가 아니라 완전히 죽었던 너희를 다시 살렸다고 말씀합니다. 엡2:1절“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아멘입니까? 사실 저와 여러분들도 또한 죽은 개와 같은 존재였지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존재였다는 말입니다. 죽은 개를 누가 거들떠보겠어요. (여름성경학교와 개) 한국 사람들은 죽은 개를 보면 개고기 해 먹겠지만, 일반적으로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 말입니다. 아무짝에 쓸모 없는 존재는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 사랑이 아니고서는 살아날 수 없고, 구원받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엡2:8-9절“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아멘.  

  그런데 주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을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롬5:8절“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죄인이었을 때”라는 것은‘죽은 개’라는 의미입니다. 은혜를 입는 므비보셋이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가 다윗의 호의를 받아 드리면서 그는 왕자들과 같은 대우를 받고 왕의 식탁에서 식사를 하면서 평생을 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날 저와 여러분들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베풀어 주시는 호의를 받아드리면 하나님의 나라, 천국에서 왕자, 공주처럼 축복을 누리며 살 수 있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아멘!

  말씀을 맺기를 소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윗은 하나님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모심으로 말미암아 나라와 가정과 개인의 놀라운 축복을 받아 영향력 있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 또한 주님을 나의 삶의 주인, 왕으로 모시므로 말미암아 이 땅에서도 당당하게 영향력 있는 삶을 사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또한 므비보셋 처럼 다윗의 호의를 받아드림으로 인하여 다윗과 함께 식사를 하고, 왕자들과 같은 대우를 받았던 것처럼 우리가 예수님의 호의를 받아 드림으로 주님과 함께하는 식탁의 축복을 누리기를 바라고, 이 땅에서도 당당하게 하나님의 자녀로써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존귀하신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1.다윗이 이르되 사울의 집에 아직도 남은 사람이 있느냐 내가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그 사람에게 은총을 베풀리라 하니라 2.사울의 집에는 종 한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시바라 그를 다윗의 앞으로 부르매 왕이 그에게 말하되 네가 시바냐 하니 이르되 당신의 종이니이다 하니라 3.왕이 이르되 사울의 집에 아직도 남은 사람이 없느냐 내가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총을 베풀고자 하노라 하니 시바가 왕께 아뢰되 요나단의 아들 하나가 있는데 다리 저는 자니이다 하니라 4.왕이 그에게 말하되 그가 어디 있느냐 하니 시바가 왕께 아뢰되 로드발 암미엘의 아들 마길의 집에 있나이다 하니라 5.다윗 왕이 사람을 보내어 로드발 암미엘의 아들 마길의 집에서 그를 데려오니 6.사울의 손자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이 다윗에게 나아와 그 앞에 엎드려 절하매 다윗이 이르되 므비보셋이여 하니 그가 이르기를 보소서 당신의 종이니이다 7.다윗이 그에게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내가 반드시 네 아버지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네게 은총을 베풀리라 내가 네 할아버지 사울의 모든 밭을 다 네게 도로 주겠고 또 너는 항상 내 상에서 떡을 먹을지니라 하니 8.그가 절하여 이르되 이 종이 무엇이기에 왕께서 죽은 개 같은 나를 돌아보시나이까 하니라 9.왕이 사울의 시종 시바를 불러 그에게 이르되 사울과 그의 온 집에 속한 것은 내가 다 네 주인의 아들에게 주었노니 10.너와 네 아들들과 네 종들은 그를 위하여 땅을 갈고 거두어 네 주인의 아들에게 양식을 대주어 먹게 하라 그러나 네 주인의 아들 므비보셋은 항상 내 상에서 떡을 먹으리라 하니라 시바는 아들이 열다섯 명이요 종이 스무 명이라 11.시바가 왕께 아뢰되 내 주 왕께서 모든 일을 종에게 명령하신 대로 종이 준행하겠나이다 하니라 므비보셋은 왕자 중 하나처럼 왕의 상에서 먹으니라 12.므비보셋에게 어린 아들 하나가 있으니 이름은 미가더라 시바의 집에 사는 자마다 므비보셋의 종이 되니라 13.므비보셋이 항상 왕의 상에서 먹으므로 예루살렘에 사니라 그는 두 발을 다 절더라

1.ダビデが 言った. 「サウルの 家の者で, まだ 生き 殘っている 者はいないか.私は ヨナタンのために, その 者に 惠みを 施したい.」
2.サウルの 家に ツィバという 名のしもべがいた.彼が ダビデのところに 召し 出されたとき,王は 彼に 尋ねた.「あなたが ツィバ か.」すると 彼は 答えた.「はい,このしもべです.」
3.王は 言った.「サウルの 家の者で,まだ,だれかいないのか.私は その 者に 神の惠みを 施したい.」 ツィバは 王に言った.「まだ,ヨナタンの 子で 足の不自由な 方がおられます.」
4.王は 彼に 言った.「彼は,どこにいるのか.」 ツィバは 王に 言った.「今,ロ·デバルの アミエルの子 マキルの 家におられます.」
5.そこで ダビデ 王は 人をやり, ロ·デバルの アミエルの子 マキルの 家から 彼を 連れて 來させた.
6.サウルの子 ヨナタンの子 メフィボシェテは,ダビデのところに 來て,ひれ 伏して 禮をした.ダビデは 言った. 「メフィボシェテ か.」彼は 答えた.「はい,このしもべです.」
7.ダビデは 言った.「恐れることはない.私は,あなたの父 ヨナタンのために,あなたに 惠みを 施したい.あなたの 祖父 サウルの地所を 全部あなたに 返そう.あなたはいつも 私の食卓で 食事をしてよい.」
8.彼は 禮をして 言った.「この しもべが 何者だというので,あなたは,この死んだ 犬のような 私を 顧みてくださるのですか.」
9.そこで 王は サウルの若い 者であった ツィバを 呼び寄せて 言った.「サウルと,その一家の所有になっていた 物をみな,私は あなたの 主人の子に 與えた.
10.あなたも,あなたの息子たちも,あなたのしもべたちも,彼のために 地を 耕して,作物を 得たなら,それはあなたの 主人の子のパン ,また 食物となる.あなたの 主人の子 メフィボシェテは,私の食卓で,いつも 食事をすることになる.」 ツィバには 十五人の息子と 二十人のしもべがあった.
11.ツィバは 王に 言った.「王さま.あなたが,このしもべに 申しつけられたとおりに,このしもべはいたします. 」こうして,メフィボシェテは 王の息子たちのひとりのように,王の食卓で 食事をすることになった.
12.メフィボシェテには ミカという 名の小さな 子どもがいた.ツィバの家に 住む者はみな,メフィボシェテ のしもべとなった.
13.メフィボシェテは エルサレムに 住み,いつも 王の食卓で 食事をした.彼は 兩足が 共になえていた.
Date : 2019-11-03 09:11:44    Read :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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